오피니언 시론

미국에 '제3의 이웃'된 몽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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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지도를 펼쳐보자.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있다. 덕분에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건설한 원나라가 명나라에 복속된 뒤부터 두 이웃 사이에서 몽골은 수백년간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다.

중국은 몽골을 식민지화하면서 '용감한'이라는 뜻을 지닌 몽골(Mongol) 대신 '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蒙古)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1920년대엔 러시아 혁명세력과 손 잡고 독립을 성취한 까닭에 아시아 최초의 공산국가가 돼 옛 소련의 위성국가로 살아야 했다. 실로 거대한 두 이웃 덕분에 몽골의 가장 큰 국가적 고민은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이웃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리적으로 인접하지 않지만 두 강대국을 정치적.군사적.경제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대안인 '제3의 이웃'으로 미국과 손을 잡게 됐다.

몽골과 미국이 '제3의 이웃'으로, 형제의 국가로 발전하기까지 몽골은 총력외교를 펼쳤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1900달러에 불과한 몽골은 자신들보다 21배나 잘사는 미국(1인당 GDP 4만100달러)에 허리케인 피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완전히 침수되기도 전에 정부 차원의 지원을 선언하고, 기업인들은 카트리나 재해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칭키즈칸 제국이 200년간 주둔한 이후 역사상 두번째로 이라크땅을 다시 밟은 몽골의 군인들이 이라크전 파병 국가 중 해당 국가의 전체 인구 대비로 환산했을 때 가장 많은 군인을 파견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전통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 사이에서 몽골은 종종 미식축구의 럭비공에 비유됐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한 존재로 분류됐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먼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동유럽의 붕괴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변신하면서 몽골의 지정학적 단점은 독보적인 장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정한 비핵국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의지, 반테러 전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등이 뒤따르면서 몽골은 매력적인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하게 됐다. 몽골은 더 이상 15년 전의 럭비공이 아니다. 베이징(北京)에서 30분, 서울에서 3시간, 도쿄(東京)에서 7시간이면 도착하는, 중.러를 한꺼번에 통제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디딤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공해 가는 몽골의 모습을 북한과 비교하면 다만 부러울 따름이다. 동시에 몽골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질수록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퇴색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일본.한국.대만으로 이어지던 미국의 안보 라인이 몽골.인도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방위 라인으로 확대될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사사로운 범인들 사이에서도 만남보다는 관계 유지가, 이별보다는 재회가 더 어려운 법이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논란으로 한.미관계가 성장통을 겪고 있다. 왜 몽골이 그토록 미국과의 인연을 갈망하는지, 역사적으로 한국의 존립을 위협했던 이웃은 누구였으며 '제3의 이웃'은 누구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전 외교부 대사

*** 바로잡습니다

11월 29일자 30면 '미국에 제3의 이웃된 몽골' 제하의 시론 중 "칭키즈칸의 서방 원정 이후 200년 만에 이라크 땅을 다시 밟은 몽골의 군인들"을 "칭키즈칸 제국이 200년간 주둔한 이후 역사상 두번째로 이라크땅을 다시 밟은 몽골의 군인들"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