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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좀먹는 중범죄" … 자원외교 수사, 검찰 특수부 투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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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찰이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 개발과 관련된 사건 수사에 특수부를 투입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은 “형사6부와 조사1부에 있던 고발사건을 특수1부(부장 임관혁)에 재배당했다”고 11일 밝혔다. 대기업·정치인 비리와 공무원 부정부패 사건 등 자체 인지 사건을 주로 수사하는 특수부가 고발 사건을 맡는 건 이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과거 대검 중수부의 역할을 맡고 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자원외교를 담당했던 관련자들의 횡령 혐의가 드러날 경우 범죄수익도 전액 환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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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배당 이유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당사자들의 자료 제출과 진술에 많이 의존하는 형사부나 조사부보다 특수부가 나서는 게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압수수색을 포함한 대대적 강제수사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자원외교 관련 사건을 ‘철피아(철도+마피아)’나 국가 보조금 횡령 사건 등과 같이 국가 재정을 좀먹는 중대 범죄로 보고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배당된 사건은 모두 3건이다. 감사원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2009년 캐나다 에너지기업 ‘하베스트(Harvest Trust Energy)’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인수 대상이 아니었던 하베스트의 부실 계열사 ‘날(NARL)’을 1조370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정유사업 분야인 날의 실적 악화가 계속되자 2013년 미국 투자은행에 1000억원에 매각했다.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돈은 329억원뿐이어서 1조3371억원의 투자 손실을 봤다. 강 전 사장이 부실 계열사임을 알면서도 인수합병(M&A) 실적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매입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참여연대와 정의당 등이 이길구 전 한국동서발전 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특수부가 맡는다. 자메이카 전력공사 지분 40%를 매입하면서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 800억원대의 손해가 났다는 게 고발 내용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가스공사·석유공사의 전·현직 사장 6명과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자원외교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이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고발된 사건도 있다.

 해외자원 개발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과제였다. 광물자원공사·가스공사·석유공사 등 3개 공공기관이 주축이었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3개 공공기관이 해외자원 개발사업에 투입한 돈은 43조원에 이른다.

1977년부터 추진한 해외자원 개발 총투자금액(57조원)의 75%에 해당하는 액수다. 하지만 과거 해외자원 개발과 관련돼 검찰이 기소한 고위 공무원 등에게 무죄가 선고된 전례가 많아 쉽지 않은 수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은 철도청장 시절인 2004년 전문기관의 사업성 분석을 무시하고 러시아 유전사업 참여를 결정했다가 계약을 해지해 철도청에 350만 달러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은 유전사업과 관련해 ‘사업을 잘 검토하라’는 취지로 원론적인 지시만 했을 뿐이며 배임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허위 매장량을 기재한 외교부 명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주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은석 전 에너지자원대사도 지난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백기·박민제 기자 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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