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실 특허심사 … 소송·이의 제기 땐 절반이 '무효' 판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성모(50)씨는 절에서 석가탄신일 때 등에 다는 연등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평소엔 납작하게 접어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펴 쓰는 연등을 만드는 기술이다. 특허 등록까지 했다. 본격적으로 생산하려고 은행과 지인에게서 4억원가량을 빌렸다.

 하지만 그의 특허는 이내 무효 소송에 휘말렸다. D 연등 제조회사가 “이미 있는 기술”이라며 소송을 냈다. 특허심판원은 D사의 손을 들어줬다. ‘신기술’이라고 소개해 반응이 괜찮길래 만들었던 연등 10만 개는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성씨는 “처음부터 이미 있는 기술이라고 판정해 특허를 내주지 않았다면 4억원 추가 투자는 않았을 것 아니냐”며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국내 특허 심사가 도마에 올랐다. 심사가 부실하다는 논란이다. 특허청이 내준 특허에 대해 누군가 “비슷한 기술이 있다”거나 “특허가 될 만한 기술이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하면 무효가 되는 비율이 절반을 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이 같은 특허 무효화율은 지난해 53%를 기록했다. 소송에 걸린 590건의 특허 중 314건이 무효 판정을 받았다. 애초 특허를 등록할 때 심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수시로 나오는 특허 무효 판정은 때론 기업가·투자자 손실로 이어진다. 연등 기술을 개발한 성씨가 그런 경우다. 벤처업체 건국산업의 박진하(54) 대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타이머를 눌러야 점화가 되고, 타이머로 설정한 시간이 지나면 가스가 저절로 끊기도록 하는 기술을 특허 등록했다. 관련 제품을 생산하려고 2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하지만 가스레인지를 생산하는 중견기업이 이의를 제기해 소송을 냈고, 결국 특허는 무효가 됐다.

 국내에서 버젓이 등록한 특허라도 외국에 추가 등록하려면 거절되는 경우 또한 상당수다. 일본 특허청에 따르면 2013년 한국에서 등록했으나 일본에서는 거절된 특허 비율이 22.4%에 달했다. 대략 네 건 중 한 건이다. 한국 특허가 중국에서는 등록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전기로를 만드는 A사가 그랬다. 흑연 소재를 이용한 가열장치를 개발해 국내 특허를 냈고, 이어 중국에 특허 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통보받은 결과는 ‘불가’였다. 중국에 이미 있는 기술이라는 이유였다. 이원일 유미특허법원 변리사는 “국내 특허를 등록할 때도 세계적으로 비슷한 기술이 있는지 살펴 있다면 반려해야 한다”며 “A사 기술에 대해 그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때론 특허청이 내준 특허를 특허청 스스로 부인하기도 한다. 벤처기업 B사는 파도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기계를 개발해 2013년 1월 국내 특허를 받았다. 직후 해외 특허를 내려고 특허청 국제조사팀에 사전조사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국제조사팀은 “해외에 존재하는 기술과 다를 게 없어 특허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지었다. 특허청 측은 “애초 국내 특허 심사 때 발견치 못한 기술 자료를 찾아냈기에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등록 심사가 잘못됐었다고 자인한 셈이다.

 특허청은 “인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심사에 만전을 기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난해 특허청에 들어온 특허·실용신안 심사청구는 모두 17만8200여 건. 이를 754명이 심사했다. 연간 1인당 236건이다. 휴일을 빼고 나면 거의 하루에 한 건 정도를 심사해야 한다는 소리다. 철저한 심사가 이뤄지기 힘든 이유다.

 특허청에서 경력을 좀 쌓았다 싶으면 특허법인으로 빠져나가는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특허청 심사인력의 평균 재직 연수는 8년1개월이었다. 익명을 원한 특허청 관계자는 “심사에 전문성을 쌓을 만하면 나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김방현·박수련 기자 kbhk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