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둔 레이건 "레바논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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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 해병대를 베이루트공항으로부터 연안의 해군함정으로「재배치」하겠다는 발표가 있은 다음날인 9일 미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미국이 모든 걸 포기하고 뺑소니를 치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평화유지군」의 자격으로 상륙했던 미 해병대가 시아 및 드루즈파 회교세력의 공격을 받으며 연안에 떠있는 해군 함정으로 철수하는 모습을 선거의 해를 맞은 미국 국민들에게「영광스러운 미국 군사력의 위력」으로 미화시키기에는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9일 미국의 행정부관리들은 해병대의 3분의1은 이 달 안으로 철수하지만 나머지는 앞으로 약 4개월의 여유를 두고 철수시키겠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해병대를 철수시키기는 하지만「철수」가「도주」로 비치지는 않게 하려는 고육지책으로『재배치』뒤라는 용어가 나왔고 동시에 4개월이라는 단계적 철수 방법이 동원된 듯한 인상이 짙다.
미국이 현재 노리고 있는 목표는 앞으로 4개월 안에 미 해군의 함포사격과 공중지원이 제공하는 보호막 속에서 현재 거의 빈사상태에 있는「제마옐」정권이 다시 소생해 베이루트의 다른 회교분파와 협상을 할 수 있게 되도록 키우는 것이다.
미국 관리들은 그런 시나리오를 설명하면서 『작은 힘으로 더 큰 목표를 도모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미 해병대를 해상함대로 철수시킨 후 인명피해가 적은 함포 사격과 공중공격만으로 지상의 해병대가 이룰 수 없었던 성과를 거두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신문들은 그와 같은 시나리오에 크게 회의를 표시하고 있고 의회 쪽에서는 민주당 중진들이 베이루트에서의 함포 사격이 원래의 파병목적에 위배된다고 반기를 들고있다.
또 군사적 측면에서 봐도 함포 사격과 공중공격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고 상대방의 예봉을 일시 꺾을 수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군사적 수단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 평정하거나 아니면 배후세력인 시리아에 치명적인 군사적 타격을 가해 협상에 응하도록 강요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 두 가지 모두가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미국 신문들의 논조는 대개 레바논사태의 성격상 정치적 협상이 군사적 압력보다 더 주효한 것인데「레이건」행정부는 군사적 해결책에 너무 몰두하다 이제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쪽으로 기울고있다.
그러한 비판자들은 평화유지군으로 상륙한 미 해병대가 「제마옐」정권을 옹호해서 반대파진지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한 때부터 미 해병대가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행동은 미 해병대를 평화유지군으로서가 아니라 레바논 내란의 한 분파의 후견세력으로 전락시켰고, 그 때문에 미국은 중재자로서의 중립성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레이건」행정부에 동정적이던 보수파 논객「조지·윌」조차도 현 레바논 사태가 이란 인질구출작전이나 62년「케네디」대통령의 피그만 기습실패에 버금가는 실패라고 비난하고있다.
뉴욕타임즈의 논객「앤터니·루이스」는 레바논사태가「레이건」의 무지와 목적의식 없는 군국주의 때문에 야기된 재앙이라고 혹평하고있다.
그러나「레이건」대통령이 앞으로 겪어야될 수난은 그런 언론계의 비판보다도 진퇴유곡에 빠진 레바논 개입과 선거의 해를 맞아 그의 실패를 물고 늘어질 민주당 측 공세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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