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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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몇 해전만 하더라도 한겨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개천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마을취로사업이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의 한 풍경이었다.
취로사업장에서 흙 몇 삽을 뜬 댓가로 지급되던 일당도 따지고 보면 당시의 경기가 매우 나쁘다고 판단한 정부가 처방을 내린 여러 가지 경기부양책의 하나였다.
만일 정부가 경기가 나빠질 것을 미리 알고 좀더 일찍 손을 썼더라면 한겨울 개천가에서 고생을 한사람들 중 상당수가 비록 임금이 좀 깎였더라도 따뜻한 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기가 현재 좋은가 나쁜가, 나아가서는 몇 개월 후의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짚어보는 일은 이래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서도 지난 30년대의 대공황에 제때 대비하지 못했던 정부가 어제의 샐러리맨에게 오늘은 공원의 낙엽을 긁어모으는 일자리를 애써 마련해주곤 했었다.
경기를 짚어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한국은행이 지난 72년부터 잡기 시작한 경기예고지표(WI·Warning Index) ▲경제기획원이 지난 81년부터 내기 시작한 경기종합지수(CI·Composite Index) ▲산업은행 등이 조사하고 있는 기업실사지수 (BSI·Business Survey Index)등이 이용되고 있다.
그림에서 보듯 WI와 CI는 계산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서로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고, 실제 시중경기의 흐름과 비교해보면 몇 달 정도 앞서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WI와 CI는 경제활동의 여러 지표 중 경기와 가장 관계가 깊다고 판단되는 18∼19개의 지표만을 골라 이율을 평균해서 계산해 내는 것이고, BSI는 실재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감」을 설문조사를 통해 판단하는 것이다.
WI와 CI를 계산해내는 여러 가지 지표 중에는 실제경기보다 앞서서 변하는 것이 있고 (선행지표) 경기와 함께 변하거나(동행지표) 조금 뒤쳐져서 변하는 것(후행지표)이 있다.
돈이 먼저 풀려야 경기가 흥청댈 것이고, 수출신용장이 많이 와야 국내경기가 활기를 띠며, 당국의 건축허가가 나가야 공사가 시작될 것이므로 통화·건축허가면적·신용장내도액 등이 바로 경기선행지표의 노릇을 한다. 이 같은 선행지표 9개만을 골라 계산해내는 CI를 특히「선행종합지수」라 하여 선행·동행·후행지표 18개를 모두 한꺼번에 평균해서 계산하는 WI와 함께 가장 중요한 경기예고지표로 활용된다.
매달 발표되는 CI와 WI가 간혹 서로 엇갈린 예고를 할 때가 있는데 이는 서로 계산방법이 다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즉 WI는 1년 전과 비교한 경기변동추세이고, CI는 한달 전과 비교한 결과다. 또한 WI에는 시중통화동향 등이 CI보다는 많이 반영되고, CI에는 수출입관련지표들이 WI보다 훨씬 크게 반영된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해서 CI는 WI보다 더 민감하게 움직이며 보통 2∼3달 후의 경기를 미리 예고한다고 보지만, WI는 매월의 세세한 경기변동을 CI 만큼 재빨리 잡아내지 못하는 대신 경기가 오르막길인지 내리막길인지 등을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표시해주며, 보통 5∼6개월 후의 경기를 미리 나타내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수를 읽는 법도 크게 달라서 항상 0∼3점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WI는 2.0이상이면「경기과열」로, 1.0이하이면「경기침체」로, l∼2사이이면 그 중간단계로 간단하지만 CI는 예를 들어 이번 달 지수가 1백23.4이니 지난달 지수 1백21.5와 비교해서 경기가 나아졌다는 식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이들 지표만으로 경기동향을 판단할 순 없다. 가장 큰 결함은 경기판단에 빼놓을 수 없는 실업률이나 근로시간, 가동률 등의 기초통계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넣으려고 해도 워낙 부실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당장 직장을 잃게 되고, 봉급을 제때 못 주고, 노는 기계들이 늘어나는 등의 사실을 전혀 반영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경제의 외형적인 규모가 늘고 주는 것을 나타낼 뿐, 기업들이 얼마나 적자를 내고 있는지의「수지」를 반영해주는 지표 역시 하나도 없다. 극단적인 예로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덤핑수출을 하고 뭉치 돈이 풀려서 부동산투기로 난리인데도 지표 상으로는 호황의 신호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기동향의 판단을 이들 지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숫자에 매달려 경기예고지표가 1.0이면 안정국면이고 0.9는 불황이라는 식의 획일적인 판단은 오히려 경기예고지표를 모르는 것만 못한 일이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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