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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사상'이 탄생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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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일러스트=김회룡]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최근 중국을 지켜보는 이들의 관심을 끄는 일이 생겼다. 지난달 말부터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는 시진핑의 ‘4개 전면(四個全面)’이 그것이다. 4개 전면이란 ‘전면적인 소강(小康) 사회 건설’ ‘전면적인 개혁 심화’ ‘전면적인 의법치국(依法治國)’ ‘전면적인 당 건설’을 말한다. 시진핑이 지난해 12월 장쑤(江蘇)성 시찰 때 처음 제기한 이후 올 들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인민일보는 이를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끌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 규정했다. 이에 마침내 시진핑 시대 중국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시진핑 사상’이 탄생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론형 정당임을 자부한다. 매 시기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론으로 정립한다. 1921년 창당 이래 중국 공산당을 지배한 건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그러나 35년 쭌이(遵義) 회의 이후 마오쩌둥(毛澤東) 지도체제가 확립되면서 ‘마오쩌둥 사상’이 등장했다. 마오쩌둥 사상의 핵심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의 현실에 맞게 발전시킨 것이다.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혁명의 주체로 삼은 게 그런 예다.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지도 사상은 ‘덩샤오핑 이론’으로 불린다. 덩의 중국에 대한 최대 공헌은 실천에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말하듯 그는 현실적인 지도자였다. 경제건설을 하나의 중심으로 삼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두 개의 기본점으로 개혁·개방과 공산당 영도 등을 꼽은 게 덩샤오핑 이론의 핵심이다.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은 ‘학습을 말한다, 정치를 말한다, 정기(正氣)를 말한다’의 ‘3강(三講) 정신’을 내놓았다가 반응이 신통치 않자 훗날 ‘3개 대표(三個代表) 중요 사상’을 제기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과 선진 문화, 광대 인민의 근본이익 등 세 가지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공산당이 한때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자본가의 이익까지 대표하겠다고 선언한 데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렇게 해서 노동자·농민의 당에서 중국 전체 국민의 당으로 변신했다.

 후진타오 시대엔 ‘과학발전관’이 나왔다. 덩샤오핑과 장쩌민 시대 고속 성장의 그늘을 치유하기 위한 성격이 컸다. 인본주의를 강조하고 조화사회를 말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외쳤다. 덩샤오핑 이론이 덩의 사후인 97년 가을에야 당장(黨章)에 들어간 데 반해 장의 3개 대표 중요 사상과 후의 과학발전관은 당사자들의 권력이 살아 있던 2002년과 2007년 각각 당장에 삽입됐다. 이후 중국 공산당은 말끝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 사상, 과학발전관을 행동의 지침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눈여겨볼 건 마오와 덩의 이름은 그들이 내세운 주의(主義) 앞에 들어갔지만 장이나 후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주의가 내세우는 영향력이 다르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에 시진핑이 내세운 4개 전면은 매우 정교하게 기획됐다는 평가다. 첫 번째인 전면적인 소강사회 건설은 2012년 18차 당 대회에서, 두 번째 전면적인 개혁심화는 2013년 가을 당 대회, 세 번째 전면적인 의법치국은 2014년 가을 당 대회, 그리고 네 번째 전면적인 당 건설은 지난해 10월 당의 군중노선교육실천활동 결산 때 시진핑이 제기한 것이다. 지난 2년간에 걸친 치국의 방략을 유기적으로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4개 전면을 역으로 해석해 올라가면 시진핑 시대가 나아가는 길을 가늠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중국 공산당 자신부터 새롭게 정신무장을 한 뒤 법치로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사회를 안정시키며, 중단 없는 개혁으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즈음한 2021년까지는 중국 국민 모두가 배부르고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소강사회에 진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집권 후 처음 외쳤던 중국꿈(中國夢)이 다소 이상에 치우친 감이 있었던 데 반해 4개 전면은 이론으로서의 논리를 갖춰 ‘시진핑 사상’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중국 영도인이 자신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을 내세우는 건 흔히 왕관에 진주를 얹는 행위로 간주된다. 특히 그 사상이 당장에 삽입되면 선대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오른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시진핑인들 왜 그런 야망이 없을까. 그는 장쩌민이나 후진타오를 뛰어넘어 ‘마오-덩-시(毛鄧習)’의 계보를 만들고 싶어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야심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진핑의 중국이 단단해 보인다는 점이다. 강력한 부패척결을 바탕으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속(中速) 성장의 경제기조를 새로운 정상상태(新常態)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반해 시진핑 정권과 출발을 같이 한 우리의 처지가 무척이나 딱해 보인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문고리 권력의 실망밖에 이렇다 할 기억이 없다. 일각에선 가계 부채로 인한 또 하나의 경제위기를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시진핑의 중국호가 장강을 헤치고 나와 태평양으로 진입하고 있는 데 반해 박근혜의 한국호는 아직 한강도 빠져나오지 못한 느낌이다. 계절은 봄인데 마음이 엄동설한인 게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