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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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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혈액 5cc만을 채취해서 컴퓨터 검사기에 넣으면 체내에 어떤 암이 발생해 있는지 아닌지, 또 어떤 진행 과정에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진단기를 개발한 윤행준씨 (29).
이 진단기의 발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큰 부자가 된 윤씨가 2살짜리 아들의 백혈병 예방 주사 접종을 위해 Y암 센터에 찾아왔다.
병원에 들어선 윤씨는 깊은 감회에 잠겼다.
바로 20년 전 자신이 백혈병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74년 청주에서, 국민학교 2학년을 다니던 시절 화가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의사 선생님이 피를 빼던 모습, 검사가 끝나고 갑자기 어두운 얼굴로 창백한 자신을 끌어안던 아버지의 모습, 그 즉시 아버지를 따라 서울 Y암 센터에 와서 치료를 받던 일들이 오늘의 방문으로 되살아났다.
또 함께 치료받던 많은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사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해서야 자신의 3년간 병원 생활이 급성 임파성 백혈병이었던 것을 알게된 사실 등….
윤씨는 병을 치료한 후 열심히 공부, 대학에는 컴퓨터 분야 학과로 진학했고 자신의 병력이 계기가 되어 암의 조기 진단을 위한 컴퓨터 판독기를 개발해냈다. 지금은 수입이 좋아 암 치료 연구에 거금을 희사할 만큼 자리를 잡았다.
2년 전 결혼한 윤씨는 첫 아들이 무서운 백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 주사를 접종하기 위해 오늘 Y암 센터를 찾은 것이다.
94년인 요즘은 옛날 홍역이나 소아마비 예방 주사를 맞듯 백혈병도 예방 주사로 예방, 상당히 희귀한 병이 되었다.
간암도 10년 전부터 간염 예방 주사가 보편화된 이후 젊은 사람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한국인에 많은 위암은 아직 예방 주사가 개발되지 못했지만 혈액 검사만으로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 수술 없이 내시경으로 초극 단파 레이저빔을 주사해 없애게끔 되었다. 치료 후 재발 예방을 위해 항암 미사일 주사를 맞으면 완벽해지는 것이다.
이 항암 미사일 기계도 실은 윤행준씨가 기증한 기금으로 개발한 것이다.
항암 미사일은 암세포 항체에 특수 항암제를 부착시킨 것으로 예전의 스마트 폭탄처럼 고도의 정밀성을 갖고 목표물인 암세포만 찾아내 파괴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암 예방 주사는 2백여가지나 되는 암들에 관한 성분 차이가 있어 모두 맞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컴퓨터로 세포를 검사, 기능상 약한 유전자 부분을 보강해주는 방법이 각광을 받으며 실험되고 있다.
이는 유전 공학의 발전으로 그 복잡한 유전자의 구조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쉬워졌기 때문으로 유전자가 부분적인 기능 이상을 보여 암의 발생 가능성이 있을 때는 그 부분을 수리, 또는 대체하는 예방적 조처가 가능해졌다.
84년에 비해 이색적인 풍경은 한국의 이런 수준을 보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암 학자들이 윤씨의 연구실과 Y암 센터 연구실에 몰려들어 연수를 받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김병수 <연세 암센터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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