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란핵 해결 돌파구 마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높아가던 갈등이 극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24일 이란의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기 위해 러시아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35개 이사국은 이틀간 일정으로 개막된 올해 마지막 IAEA 정기이사회에서 이 같은 입장에 대체적인 합의를 봤다고 한 회의 참석자가 전했다.

이에 따라 서방을 대표하는 유럽연합(EU) 3국(영국.프랑스.독일)과 이란 간의 외교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돼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 러시아의 중재안=이란과 가까운 러시아는 이란의 부셰르 핵발전소 건설을 지원하는 나라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란과 서방의 입장을 적절히 반영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이란의 우라늄 변환 작업은 허용하지만 핵무기 개발의 가능성이 있는 우라늄 농축 작업은 러시아가 맡는다는 묘안이다. 아예 핵물질(6불화우라늄)을 러시아로 옮겨가 IAEA의 철저한 통제 아래 농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란이 농축 과정에서 핵폭탄용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 가능성을 원천봉쇄했다. '평화적 핵 이용'을 주장하는 이란의 체면을 살려주는 동시에 핵개발 원천봉쇄를 요구해온 서방의 우려도 만족시킨 현실적 제안이다.

◆ 서방의 지지=영국.프랑스.독일 등 EU 국가들은 러시아 중재안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 초안을 IAEA 이사회 의장에게 전달했다. 그레고리 베르데니코프 러시아 대표는 "러시아는 이란과의 핵 협력에서 독점적 지위를 추구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중재안은 IAEA 이사국들과 논의를 거쳐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도 강경한 자세에서 한발 물러섰다. 그레고리 슐트 미국 대표는 "유럽 동맹국들과 함께 이란에 또 한번의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무한정한 인내는 있을 수 없다.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계속 이행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로 넘기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를 덧붙였다.

◆ 이란도 수용 자세=이란도 일단 긍정적이다. 이란 핵협상 대표인 알리 라리지니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러시아 중재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평화적 핵기술을 추구할 권리는 인정받아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지난주 이란 정부가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에게 "우라늄 농축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고 말한 것보다는 진전된 자세로 풀이된다.

◆ 외교 협상 곧 재개될 듯=이란이 러시아 중재안을 받아들인다면 조만간 EU 3개국 및 러시아와 세부 협상을 하게 된다. 이란과 러시아의 우호관계를 감안하면 타협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벌써 회담 장소와 시기가 거론되고 있다.

IAEA 본부가 있는 빈에서 다음달 6일에 열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실제 협상은 내년 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란이 러시아 안을 시간 벌기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남아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