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은 한계 없어 … 지하·해양 넘어 우주까지 개척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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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태국 빠따니~나라티왓 공사에 참여했던 해외 건설 역군이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 사진을 배경으로 뭉쳤다. 왼쪽부터 백동명 전 전무, 정태수 전 전무, 임형택 전 상무. [이태경 기자]

“지금도 롤러가 몇 대 있었는지 생생합니다.”

 50년이 지났지만 태국 빠따니~나라티왓 고속도로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또렷했다. 감독관 이름까지 정확했다. 당시 공사의 주역인 정태수(84)·임형택(81)·백동명(74)씨 얘기다. 이들은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다른 해외 사업도 따냈기 때문에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 이후 20~30년간 중동을 중심으로 해외 건설 현장을 누빈 뒤 임원으로 퇴임한 한국 건설의 산증인들을 지난달 27일 서울 압구정동 건우회(현대건설 퇴직자 모임)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시 공구장을 맡았던 정태수씨는 “도로 건설 경험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수주가 쉽지 않았다”며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해외 진출을 위해 미리 국내에서 3㎞짜리 수원·오산·군산 비행장 활주로를 건설해 본 게 실적으로 인정돼 98㎞ 고속도로 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과장급 엔지니어였던 임형택씨는 “첫 두 달 동안 우리 방식대로 밀어붙였다가 미국 감독관이 국제 규격을 문제 삼는 바람에 다 뜯어내고 다시 시공했다”며 “재공사 때문에 손해는 많이 봤지만 결과적으로는 국제 기준을 익힌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당시까지 한국에서 땅을 다질 때 쓴 장비(롤러)는 태국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매일 비가 와 뻘밭처럼 끈끈한 진흙탕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에서 진동식 롤러 8대를 수입해 땅을 다질 수 있었다.

 정주영 전 회장의 불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스드도 많았다. 정 회장은 공사 기간 동안 세 차례 현장을 방문했다. 평소 미국 감독관은 인력과 장비를 정해진 순서대로 투입하도록 했지만 정 회장이 올 때면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하는 걸 눈감아줬다. 그러지 않으면 정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는 걸 미국 감독관도 알았기 때문이다.

 태국에 이어 70~80년대 중동 붐의 주역으로 활약한 이들은 최근 건설업이 사양산업이나 비리 온상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비쳐지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백 전 전무는 “일부 때문에 건설업 전체가 매도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건설인들이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역군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면 해외 건설의 미래가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했다. 정태수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 순방을 다녀온 성과를 보니 건설을 포함해 정보기술(IT)·식품까지 수출길이 열린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며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제2의 중동특수가 곧 시작될 거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백동명씨는 “건설업은 자연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 중동 사막을 중심으로 지상 건설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지하·해양을 넘어 우주까지 한국 건설이 선점한다는 자세로 미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현실에 굴하지 않고 도전정신으로 개척해 나가 달라”고 당부했다.

글, 사진=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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