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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간 돌본 에볼라 환자 절반 사망 … 자책에 시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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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나연씨. [강정현 기자]

“예멘·우간다 등 여러 의료구호 현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죽음을 목격했어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서아프리카 에볼라 치료센터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죽음 그 이상이었습니다. 너무 쉽게, 너무 자주 환자들이 스러졌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고 귀국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나연(40)씨는 5일 인터뷰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국제 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MSF)의 마그부라카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환자를 돌봤다. MSF 소속으로 에볼라 치료에 동참한 한국인 의사는 그를 포함해 두 명이다.

 센터에는 미국인 소아과 의사, 네덜란드 열대의학 전문의, 김씨 등 의사 3명이 배치됐다. 외국인·현지인 간호사 등 10인으로 구성된 4개 팀이 3교대로 근무했다. 6주 동안 75명의 환자가 입원했고, 절반 가량이 숨졌다.

 “환자가 죽을 때마다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을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혹시 살았을까’ 하는 반성과 자책에 시달렸어요. 에볼라가 발생한 지 40년 가까이 됐는데 대응할 의학적 도구가 아직도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루 일과는 채혈, 투약, 회진, 식사 돕기, 구토·배설물 치우고 환자 씻기기 등 빠듯하게 돌아갔다. 수액치료 등 치료에 관한 결정은 의사가 내리지만, 나머지는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이 따로 있지 않았다. 리더가 그날그날 할 일을 정해준다. 그는 “한국 병원에서 일할 때 잊었던, 하지만 의사로서 매우 중요한 일들을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나연(왼쪽)씨가 시에라리온 에볼라 치료센터에서 동료와 이동하고 있다. [사진 국경없는의사회]

 그는 시에라리온 진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17세 소녀 임신부가 치료센터에서 출산한 일이 있었어요. 에볼라에 감염된 임신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99% 감염이 되고 결국 죽는다고 학계에 보고돼 있어요. 따라서 감염된 엄마의 모유를 수유하는 것도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미국인 소아과 의사가 ‘아기가 감염이 안 됐을 1% 가능성이 있으면 살려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던져 결국 모유 대신 분유를 먹였고, 아이와 엄마는 건강하게 퇴원했습니다.”

 김씨는 이화여대 의예과 1학년 때 의료봉사동아리 ‘이울’에 참여하면서 ‘구호 의료’로 진로를 정했다. 내전이나 분쟁, 자연재해, 가난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진료하는 걸 목표로 정했다. 이에 맞는 ‘스펙’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질병을 두루 진료하는 가정의학을 전공했고, 태국에서 열대의학 과정을 수료했다. 이번이 MSF를 통해 참가한 7번째 구호활동이다. 2008년 이후 예멘·우간다·말라위·에티오피아 등을 찾아갔다. 에이즈·결핵·홍역·황열병 환자들을 숱하게 만났다.

 김씨는 에볼라 치료에 성공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다섯 살 소년이 막 치료센터에 들어왔을 때는 설사가 너무 심하고 피를 토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는데, 3주 이후부터 나아졌어요. 온 센터의 관심이 아이의 대변 상태나 식사를 비웠는지에 쏠렸어요. 완치돼서 퇴원하는데 아이 얼굴이 어두운 거에요. 집에 돌아가면 배불리 먹을 수 없고, 이만한 관심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아이도 직감했던 것 같아요.” 그는 곧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지구촌 이웃이 있는 다른 현장으로 간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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