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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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앞으론 결혼식 뒤에 피로연을 할 수 있게 될 모양이다.
피로연은 결혼이나 출생을 일반에게 널리 알리는 뜻의 연회다.
거기엔 「널리 알린다」는 뜻과 축하의 뜻이 엉켜 있다.
그러나 한동안 우리 가정의례준칙에선 결혼 뒤에 있어야할 피로연을 금했다. 사치·낭비풍조를 근절하겠다는 뜻에서다.
막상 피로연을 폐하고 나서 주최측과 축하객들은 어딘가 허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준칙」을 어기면서 약식 피로연을 신랑·신부도 없이 결혼식장 근처의 음식점에서 갖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전통혼례에서는 피로연 같은 것이 없었다. 다만 잔치가 있었다. 신랑·신부의 교배 례가 있고 폐백 절차가 진행될 때 손님들을 위한 잔치가 이미 벌어지는 것이 상례였다. 잔치는 때때로 며칠 뒤 「신랑 달기」 까지 여러 차례 나누어 진행됐다.
전통혼례는 서구 풍의 혼례가 밀려들면서 많이 변했다. 피로연 절차가 바뀌게 된 것도 물론이다.
서양식 피로연 (웨딩 리셉션)은 혼례식에 이어 자리를 옮겨 진행된다. 먼저 혼례 기념사진을 찍고 손님들은 방명록에 서명한 뒤 리시빙 라인을 이룬 신랑·신부 두 가족의 인사를 받으며 입장한다.
신부의 식탁과 부모의 식탁이 따로 마련되고 축배와 춤·결혼 케이크 자르기가 있다.
일본의 경우도 양식 혹은 화풍의 차이는 있지만 신랑·신부가 참석해서 주인공 노릇을 한다. 하객들은 음식을 들면서 신랑·신부의 칭찬으로 일관한다.
대만에선 결혼식과 피로연이 아예 한곳에서 이루어진다. 대개 큰 식당에서 결혼식이 끝난 뒤 12코스의 음식으로 푸짐한 피로연이 베풀어진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결혼식 뒤에 전통적인 피로연과 무도회가 이어진다.
6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식과 피로연을 한자리에서 치른 적이 있다. 결혼식 비용을 줄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데 좋은 방식이다.
한데, 그때도 묘한 풍습이 있었다. 식이 끝나고 신랑·신부가 피로연에 곧바로 참석하지 않고 자동차로 시내일주를 하던 풍습이다.
테이프로 휩싼 자동차가 깡통까지 굴리면서 달리는 모습은 일종 가관이었다.
하객들은 피로연 장소에서 신랑·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상식 밖의 무례.
결혼식 피로연은 부활되겠지만 그런 꼴불견과 무례는 다시 살아나선 안되겠다.
가정의례준칙은 아름다운 예절을 살리는 좋은 지침 구실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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