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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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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타잔 영화의 주역 배우 「조니·와이즈뮬러」가 사망했다. 올해 나이 80세. 수많은 타잔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던 그의 죽음은 그를 「우상시」하며 자랐던 지금의 성인 세대들에게 한 가닥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조니·와이즈뮬러」 (J. Weissmiller) 는 1904년 펜실베이니아주 와인드버 출생. 한 시대를 대표한 미국의 수영 선수로 입신한 그의 일대기는 소년기의 소아마비를 극복했다는 데서 매우 감동적이다.
그는 1924년과 1928년 두 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 5개를 획득했다. 아울러 두 대회를 전후해 그는 미국 국내 챔피언 52회, 세계 기록 수립 67회라는 초인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이 천재적인 수영 선수가 타잔 영화의 주역으로 발탁된 것은 전혀 우연이었다.
1930년 어느 날 그는 할리우드 체육관에서 수영을 하던 중 소설가 「시릴·흄」의 눈에 띄게 됐다. 당시 「흄」은 타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던 중. 그는 2백 파운드의 건장한 이 수영 영웅을 세계 청소년의 영웅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와이즈뮬러」의 첫 타잔 영화 "원숭이 인간 타잔" 이 탄생했다.
타잔은 「와이즈뮬러」가 첫 번째는 아니다.
1918년 첫 번째 타잔 영화의 주인공은 「엘모·링컨」. 그 이후 4명이 더 타잔 역을 했고 「와이즈뮬러」는 제6대 타잔이다.
「와이즈뮬러」가 타잔으로 성공한데는 할리우드 흥행사들의 쇼맨십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여 타잔 「제인」을 등장시킨 것이 바로 대중의 구미를 자극한 것이다. 「제인」 역은 「모린·오설리번」. 「와이즈뮬러」보다 7살 연하였다.
타잔 영화의 인기는 무엇보다 잃어버린 원시에의 향수 때문이 아닐까. 하반신만 가린 반라의 밀림 생활, 백수를 불러모으는 독특한 기성, 나무와 나무 사이를 줄타는 민첩성, 밀림의 평화를 지키는 정의.
이 모든 것의 화신인 타잔은 도시 생활로 왜소해진 현대인의 심리적 보상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지 않았을까.
17년 간의 「와이즈뮬러」 시대가 끝나고 지금의 타간은 14대 째. 「마이크·헨리」가 계승하고 있다. 요즘 타잔은 문명의 오염으로부터 밀림을 지키는 것이 주 업무. 남자의 건강미나 동물대군의 질주 등 원래의 제 맛을 잃고 있다.
더구나 타간을 대신하는 "슈퍼맨" "6백만 불의 사나이" 등이 출현, 타잔의 인기를 빼앗아가고 있다.
그래도 타잔 영화는 아직도 어린이 세계의 공상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잔에서 은퇴한 「와이즈뮬러」는 그 후에도 어린이에게 봉사했다.
「케네디」 재단과 국제 수영 명예 전당에서 장애자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어린이의 왕자가 끝내 그 이미지를 깨지 않고 숨졌다는데서 타잔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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