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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칼럼] 반퇴시대와 저금리의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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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이 판에 집이나 살까.” “이 판에 돈 빌려서 주식이나 투자할까.”

요즘 이런 생각하기 딱 쉬운 분위기입니다. 전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전세금 올려주는 데도 한계를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반포동의 한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는 1년 사이에 전세금이 1억6500만원이 올라 전세금이 11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에서는 1년에 5000만원씩 뛰는 것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집을 사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식시장 역시 체감경기에 비해서는 펄펄 끓은 것같은 분위기입니다. 기업들 수익을 반영하는 거울이 증시인데 참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주가예측 전문가들인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코스피지수의 추가 상승에 무게를 두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바로 저금리가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2008년 이후 주요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엄청나게 풀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2%여서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마음만 먹으로면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을 만큼 금리 문턱이 낮아졌습니다. 이른바 유동성 장세가 부동산이고 주식시장이고 마구 넘쳐 다니고 있는 셈입니다.

입사 직후 서른 살 때부터 퇴직 후 30년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반퇴시대를 사는 분들은 이런 저금리 상황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적절히’ 활용하면 좋습니다. 지렛대 효과라고 할 수 있는건데, 저축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사고 뭘 하려면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대출을 활용하면 자산을 불릴 에너지가 커집니다.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원리금의 30% 이내에서 대출 원리금을 값아나가는 수준이라면 무리가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퇴시대에 사는 분들은 저금리가 양날의 칼(double-edged sword)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최근 공무원들이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에 대해 한마디로 '노 프라블럼(no problem)'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난해부터 저금리와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가 한층 가열되면서 1년 새 가계부채가 68조원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가계신용 잔액이 1089조원으로 1년 전보다 67조6000억원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계부채 총량은 늘었지만 전반적인 리스크는 축소됐다”고 밝혔습니다. 안심하라는 얘기입니다. 주택 가격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니 그만큼 자산가치가 올라서 문제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주변의 일부 지인들도 대출을 했는데 금리 인하 덕분에 1년 사이 부담이 확 줄었다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회복 조짐이 경기회복의 불씨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대와 해석은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과도하게 빚을 얻으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 금융시장의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인 미국은 지난해부터 앞으로 언제든 때만 오면 금리를 올린다고 거듭 예고하고 있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연내에는 그렇게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에 편승해 과도한 빚을 얻은 다음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어떻게 될까요. 빚을 잔뜩 얻어뒀는데 금리가 오르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위기를 의미하는 블랙스완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2008년 9월 15일 리만 브라더스 사태도 전격적으로 현실화했고, 한국의 외환위기도 충분한 예고 없이 하루 아침에 현실화했습니다. 당시에도 정부에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니 문제가 없다. 공연한 걱정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대가는 국민이 혹독하게 치러야 했습니다. 재벌기업 16개와 대형 시중은행 5개 공중분해되고, 실업자 200만 명이 양산돼 지금도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반퇴시대에는 여생이 길기 때문에 재테크나 투자와 관련해 한번 삐긋하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하고, 회복하기도 어렵습니다. 정부가 빚을 권하는 요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도한 대출은 반퇴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kim.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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