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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교수의 마음과 세상] ‘욱’해야 통하는 세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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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욱’해서 ‘억’하는 행동과 사건이 많아졌다. 50대 남성이 전 동거녀의 가족을 살해했다. 70대 남성은 평소 불화가 있던 형과 형수, 경찰까지 엽총으로 쏴 죽였다. 대구에선 20대 남성이 재결합 요구를 거절하자 그녀의 집 앞에서 분신자살을 감행했다. 전주에선 20대 여성이 역시 재결합을 거절당하자 칼로 전 남자친구의 가슴을 찔렀다. 11개월 된 딸이 처방받은 약을 먹고 설사를 하자 담당 의사를 폭행을 했는데 치과의사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를 보니 충동조절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가 2009년 3720명에서 2014년에는 5544명으로 49%가 늘었다. 20대 남성이 가장 많고 증가하는 추세였다. 약물이나 다른 정신질환에 의하지 않고 오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문제가 될 때 충돌조절장애란 진단이 내려진다. 임상에서 흔히 내리지 않는 병명이다. 또 자기 문제로 인정하기보다 상황 탓으로 돌리기 쉽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야 병원을 찾게 된다는 점에서 이 숫자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그러니 실제 충동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은 이보다 수백 배는 많을 것이다.

갑자기 우리나라에 참을성 결핍 바이러스라도 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난 개인의 취약성 증가보다 십여 년 사이의 환경 변화에 주목한다. 먼저 자기중심주의의 강화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고 참는 일이 많다. 집단의 암묵적 압력과 제재를 받아들인 후엔 고민 없이 이기적 욕심ㆍ충동적 욕망을 억누른다. 공동체를 위해 참고 희생하면 나중에 그게 본인에게도 이득이 된다고 교육 받는다. 또 경험을 통해 이를 체득한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배에서 내리지 말고 기다리란 말을 들은 아이들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비극적 사건은 큰 충격을 줬다. 조직의 비리를 제보한 사람은 도리어 심한 개인적 고통을 받는다. 어느새 당장 내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먼저가 된다. 두 번째는 인내를 요구하지 않는 환경의 변화다. 할아버지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끝까지 앉아 있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손자는 학원을 가야 하니 가족 식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24시간 편의점에 가면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지만 사회성을 위해 꼭 필요한 인내심을 생활에서 익힐 기회가 줄어들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보다 당장 답을 듣지 못하면 미칠 것 같아진다.

마지막으로 소통의 문제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이만큼 표현하면 상대가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소통의 균형이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커진다고 해 상대의 반응도 거기에 따르지 않는 게 문제다. 이럴 때 상대 처지를 먼저 생각하고 내 요구수준이 과(過)한지 살펴야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참을성이 줄어들면 그럴 여유가 없다. 기대만큼의 반응이 없으면 내 목소리와 감정의 수위를 높인다. 그래야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문이 안 열리면 더 크게 두드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몇 시인지, 열어줄 상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말로 하기보다 칼로 찌르고 총을 쏘며 분신을 한다. 이 정도 해야 내 마음이 단번에 확실히 전달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덕분에 갈수록 작은 일에 ‘욱’해서 서로를 다치게 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한두 명의 이상한 사람이 늘어난 게 아니라 세상의 큰 흐름이 만든 면도 크다는 것이다. 개인을 처벌하는 것만큼 이런 분위기를 반전할 환경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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