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스펙 안 보는 기업 채용 정책 확산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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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SK가 올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에서 스펙을 보지 않기로 했다. 입사지원서에 외국어 성적, 해외 경험, 수상 경력, 업무 경험 등을 기재하는 난을 없애기로 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청년들의 과도한 스펙 쌓기 경쟁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몇몇 대기업도 올 상반기 채용에 스펙을 대폭 줄이고 있다. 과거 기업들이 입사 전형에 각종 스펙을 반영하면서 청년층의 스펙 쌓기 경쟁이 과열되고 사회 문제로까지 번졌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의 전향적 변화를 환영한다.

 그동안 청년들은 스펙 경쟁으로 과도한 비용을 치렀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스펙 확보에 쏟으면서 ‘삶의 질’이 떨어졌다. 이뿐 아니라 해외 경험 등 돈이 많이 드는 스펙 때문에 가난한 계층 청년들의 소외와 좌절도 야기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기업들의 ‘스펙 초월’ ‘스펙 타파’ 채용 논의가 시작됐고 여러 기업이 ‘스펙 타파, 직무 중심’ 채용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의 절반이 ‘실제 취업시장에서 스펙 초월 채용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하는 등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또 입사지원서에 스펙난은 지웠어도 서류전형의 중심이 자기소개서로 옮겨가면서 또 다른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자소서엔 ‘직무와 관련된 풍부한 경험’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스펙=돈’ ‘직무 경험=인맥’이라고 말한다. 집안이 받쳐줘야 자소서에 쓸 말이 생긴다는 것이다.

 최근 취업시장이 축소되고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들의 채용 방식은 우리 사회의 문화와 젊은이들의 삶을 바꿀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점에서 대기업들의 스펙을 보지 않는 채용이 과열된 스펙 경쟁을 다소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한편으론 인맥이 작용하는 직무 경험에 가중치가 높아지는 데 대해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집안 배경이 취업 소외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업들이 구직자 본인의 능력만을 볼 수 있는 정교한 채용 시스템 마련에 좀 더 고민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