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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과학과 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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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영국 '네이처'와 미국 '사이언스'는 100년간 세계 과학 흐름을 주도해온 잡지다. 다윈의 진화론 논문과 웟슨.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는 네이처를 통해 선보였다. 뢴트겐의 X선 발견과 모건의 초파리 돌연변이 연구, 광선이 중력장 때문에 굴절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중력렌즈이론은 사이언스에 실렸다. 학술지로 치자면 물리학의 '피지컬 리뷰', 생물학의 '셀', 화학의 '젝스' 등이 해당 분야의 최고로 꼽힌다. 그러나 전통과 영향력에서 네이처나 사이언스를 당해내지 못한다.

두 잡지의 발행부수는 적지만 영향력은 1000만 부 이상이다. "한번 게재되면 10년간 연구가 보장된다"고 할 만큼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다. 두 잡지의 표지논문은 모든 과학자의 꿈이다. 이곳의 편집자 책상은 최신 연구결과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자리다.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객관적 검증 절차도 엄격하다.

그렇다고 모두 완벽할 수는 없다. 1912년 영국에서 발굴된 필트다운 화석은 과학계의 대표적 사기로 꼽힌다. 현대인의 가장 오랜 조상이 영국인으로 증명된 것이다. 화석은 대영박물관에 고이 모셔졌다. 그러나 40년 후 연대측정 과정에서 사기극이 들통났다. 인간의 두개골에 오랑우탄의 턱을 붙였고 오래된 화석처럼 보이게 중크롬산염으로 착색처리한 사실이 밝혀졌다.

도쿄대의 다이라(多比良) 교수는 최근 네이처의 권위에 상처를 낸 인물이다. 그는 "암의 전이를 좌우하는 분자는 리보자임"이라는 논문을 잇따라 발표했다. 쥐 실험을 통해 리보자임이 암세포의 침투를 완전히 차단했다고 주장하면서 노벨상 0순위로 꼽혔다. 그러나 다른 연구자들의 실험에서 같은 결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논문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그는 "실험 결과를 보존하지 않았다"고 얼버무렸다. 도쿄대는 지난 9월 다이라에게 강제로 재실험을 요구했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를 놓고 네이처와 사이언스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실험용 난자를 부적절하게 입수했다는 것이다. 생명에 관계된 연구인 만큼 윤리기준은 엄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처음 배아줄기세포를 만든 찬란한 업적까지 송두리째 매도돼선 안 된다. 당당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어설픈 대응으론 제2의 필트다운, 제2의 다이라로 몰릴 수 있다. 연구과정에서의 단순한 실수와 고의적 사기는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