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선 사람' 즐겨 쓰다 남한 발전상 접하며 고려인 명칭 선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구소련공화국에 속해 있다가 1991년 독립한 카자흐스탄은 140여 개 다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다. 고려인은 10만 넘는 인구로 9번째 큰 소수민족 집단을 이룬다. 고향인 한반도의 조선 말기로부터 시작한 고려인의 이주는 제정 러시아, 일제강점기, 해방 정국, 소련시대, 독립공화국 시대를 거치는 역사의 질곡 속에 유례없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낳았다. 조국 땅이 분단되자 이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는 국제 미아, 단절의 이산족(離散族)이 된 것이다.

 명칭부터가 이들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구소련 거주 동포들은 스스로를 ‘조선 사람’ 또는 ‘고려 사람’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고려인이라 부르면 조선 사람이라고 정색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한국인이라는 뜻의 러시아말 ‘까레이스키’를 번역한 고려 사람보다는 북한에서 부르던 조선 사람이 더 친숙한 까닭이다. 고려인의 선조가 함경도 출신이 다수여서 정서적 모국을 북한으로 치는 후손이 많다.

 분수령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북한에 우위를 두고 치우쳐 있던 고려인들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남한의 발전상을 목격하며 놀랐다. 이후 한국과 소련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남과 북 모두에 중립적이라 할 ‘고려 사람’, 즉 고려인을 선택한 것이다.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귀향의 꿈을 안고 살지만 무심한 조국에 원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정체성’을 연구한 명순옥(57·알파라비 카자흐 국립대 한국학과) 교수는 “고려 사람 대부분은 멀지 않은 미래에 분단 상황이 종료돼 한국에서 죽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산다”고 말했다. 명 교수는 “일회성 초청과 방문보다는 국민으로서 한반도 발전의 적극적인 일꾼이 되고자 하는 고려인 동포의 활용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알마티(카자흐스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