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김치 많이 드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치 파동은 두 가지 면에서 교훈을 줍니다. 첫째 국민 건강과 관련한 보도는 신중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언론은 보도 초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다'는 사실에만 주목한 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전하다'는 의미 부여에 소홀했던 것이지요. 그 사이'기생충 알'이란 파괴적 어감을 지닌 용어가 선정적으로 보도됨으로써 소비자들은 입맛을 잃고, 김치업체는 도산했으며, 중국과의 외교분쟁까지 생겼습니다. 일차적 책임은 전문가의 고증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서둘러 발표한 식약청에 있습니다. 그러나 필경사처럼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옮기기에 급급한 언론의 책임도 있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저를 포함한 기자들이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째 주관적 느낌과 객관적 사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기생충 알이 든 김치 먹기'와 '버스 정류장에서 10분 서 있기'중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건강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전자가 낫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10분 동안 마신 매연은 우리 폐 속에서 혈액과 섞여 바로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주지만 미성숙 기생충 알은 대부분 대변으로 빠져나오기 때문입니다. 드물지만 설령 감염된다 해도 큰 문제가 안 됩니다. 기생충은 겉보기엔 징그럽지만 대부분 구충제 복용만으로 치료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누군가 한입 베어 먹은 떡'과 '소변이 묻은 빵' 그리고 '피가 묻은 주사기'중 어떤 것이 가장 위험할까요. 정서적으론 다분히 소변이 가장 더럽고 그 다음이 침이며 혈액은 가장 깨끗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의학적 사실은 사뭇 다릅니다. 피 묻은 주사기가 가장 위험하지요. 에이즈나 간염 환자의 피가 묻은 경우라면 자칫 찔릴 경우 백발백중 감염됩니다. 에이즈나 간염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며 이들은 피를 통해 옮겨집니다. 어떤 경우든 다른 사람의 혈액이 내 혈액과 섞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피에 비하면 침은 훨씬 덜 위협적입니다. 침으론 간염이나 에이즈가 옮겨지지 않습니다. 잇몸질환으로 구강출혈이 있지 않는 한 감염자와 키스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침은 헬리코박터 세균이나 충치 유발 세균 등을 옮길 수 있습니다. 음식물을 같이 떠먹는 습관은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소변입니다. 방광에서 요도를 통해 나오는 소변은 대부분 무균 상태입니다. 기분은 나쁘지만 침이나 혈액보다 소변이 훨씬 덜 해롭다는 것이지요.

3%의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다고 합니다. 무해하다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3%를 0.3%로 줄이려는 노력은 당연히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기생충 알이 나왔다는 보도만으로 국민 건강에 많은 공헌을 해온 김치를 외면하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입니다. 매사가 그러하듯 이성과 감성이 충돌할 때 이성을 따르는 것이 정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쪼록 김치 많이들 드시기 바랍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