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첨단기술독주에 유럽선 연합전선 구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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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재 프랑스에 보급돼 있는 개인용 컴퓨터 5대중 4대가 외제다」.
「작년과 금년 서유럽의 전자회사들은 제품제조에 쓸 대부분의 반도체를 미국·일본등지로부터 수입했다」.
「과거 10년간 서유럽국가들은 약1백억달러에 달하는 첨단기술사용료를 미국·일본등에 지불했다」.
이같은 사실들은 오늘의 서유럽에 있어서 산업기술의 낙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몇개의 실례에 불과하다..
물론 아직까지 프랑스의 에어버스나 로키트는 미국의 보잉이나 스페이스셔틀과 경쟁관계에 있고, 이탈리아의 피아트사는 미국의 클라이슬러사에 자동차제조용 로봇을 공급하고 있기는 하다.
또 영국의 해리어 수직 이·착륙기나 서독의 레오파드탱크같은 군사장비는 그 방면에서의 우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반도체 유전공학등 첨단기술산업 분야 대부분에서 유럽은 미국·일본의 공략에 힘겨운 방어전을 펴고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18세기중엽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를 새로운 시대로 이끈 영국, 카메라 한대를 만들어도 견고하고 완벽하게 만들기로 이름난 서독등 막강한 산업국들이 도사리고 있는 유럽이 왜 이러한 어려운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는가.
우선 연구개발투자(R&D)의 경시를 이유로 들수있다.
일본의 경우 78년이후 매년 15%의 투자성장을 보여 83년에는 2백80억달러가 될것으로 예상되는데 비해 유럽대부분의 국가들은 80년이후 답보상태이거나 오히려 감소되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절대 액수면에서도 유럽쪽의 열세는 두드러져 82년 기준으로 우주산업분야의 R&D규모를 보면 미국이 53억달러, 일본이 4억달러인데 비해 서독·영국은 2억9천만달러, 1억4천만달러에 불과하고 프랑스만 4억3천만달러로 일본을 약간 웃돌고있을 뿐이다.
다음으로는 연구인력의 부족을 들수 있다. 미국이 83년초 현재 70만명, 일본이 70만명의 고급과학기술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반해 서독은 13만명, 영국은 10만명 내외이고 프랑스는 이제 겨우8만명을 넘어선 실정이다.
고급인력의 양성면에서도 그러한 패턴은 두드러져 프랑스의 경우 4천명의 컴퓨터엔지니어가 필요하지만 현재 확보된 인력은 3천명뿐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현재의 교육체제로는 앞으로 10년간 소요될 정보전문인력의 10%만이 공급가능해 문제가 되고있다.
이러한 첨단기술확보를 위한 기본조건의 불비이외에도 장애는 많다.
서독의 경우 중세이후 체계화돼 내려온 마이스터제도가 70년대초까지는 산업기술선진화에 기여해왔으나 첨단기술의 확보면에서는 오히려 제약이 되고있다.
프랑스나 몇몇 국가의 경우는 사회당 정권의 등장이 기업들의 의욕을 떨어뜨려 첨단기술확보에 저해요소가 되고있다.
이러한 악조건속에서도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미·일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한 안간힘을 다각적으로 펴고있다.
프랑스·영국등 유럽의 11개국이 결성한 ESA(유럽우주기구)는 국가별 연구개발비외에 따로 10억달러를 들여 이미 미국에서 실용화되기 시작한 우주개발산업을 뒤쫓기 시작했다.
한편 EEC에서도 범유럽적으로 추진되는 반도체기술개발산업에 이미 4천만달러를 투자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자금의 공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의 연구개발투자정책.
프랑스의「미테랑」정부는 88년까지 전자산업분야에만 2백억달러의 R&D투자를 투입키로 했고 67년이래 매년 17억달러씩을 산업계에 공급해오던 서독정부는 최근 침체된 기술집약형 신기업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1억9천만달러를 따로 내놓았다.
이러한 자금지원외에도 유럽의 여러국가들은 미국과 일본의 질주가 인력고급화에 힘입은 것이라는 판단아래 대학연구소와 산업간의 긴밀한 연계를 유도하고 있다. 유럽은 뒤늦게나마 미·일·유럽의 첨단기술 삼극체제를 이루기위해 힘든 경쟁에 뛰어들었다. <윤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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