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으로 말기 암 이겨냈어요" 22㎞ 뛰어 출퇴근하는 요리사 오상효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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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남자 오상효입니다."

서울 여의도 '63시티 부페식당'의 오상효(36) 부조리장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은 누구나 이 말을 듣게 된다. 항암 치료를 끝내고 직장에 돌아온 뒤 그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십니까. 요즘 같은 계절이면 더 행복해집니다. 새벽 출근길에 만나는 나무와 풀과 공기의 냄새가 새록새록 느껴지니까요."

오씨는 서울 상암동 집에서 여의도 63빌딩까지 왕복 22km 거리를 매일 뛰어서 출퇴근한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마라톤 풀코스 경기에 출전하고 짬짬이 중.단거리 마라톤 대회에도 나간다. 올 6월 회사 측이 주최한 '63 마라톤'에서는 1위로 골인했다.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위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은 직후였다.

결혼한 지 3년째, 아이가 두 돌을 갓 넘긴 2001년 초 새벽에 속이 쓰려 병원에 갔더니 위암 말기(3기)라고 했다. 수술로 위의 70%를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엔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은 무서웠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구역질 때문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하루종일 몸을 오그린 채 누워만 있었다. 6개월 사이에 몸무게 14kg이나 줄었다. 기운을 차리기 위해 집 주변을 걷다가 뛰기 시작했고 2003년 3월 처음으로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마라톤은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그에게 안겨줬다. 하루 8~10시간을 꼬박 서 있어야 하는 직장 일도 더 이상 힘에 부치지 않았다. 양식 조리사 자격증만 갖고 있던 그는 2년 새 한식.제과.제빵 자격증을 땄다. 지난해 5월엔 서울국제요리대회에 참가해 '5가지 야채 요리'를 선보여 금메달을 받았다. 지난해 6월엔 부조리장으로 승진도 했다.

"제게 주어지는 하루 하루가 너무 감사해서 뭐든지 열심히 하면서 살고 싶어요.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사람의 남은 생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나눠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수술 후 달라진 것이 또 있다. 전엔 화를 풀지 못한 채 쌓아두는 편이었다. 술.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집안 병력도 없었기에 그는 암에 걸린 이유가 그 화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요즘 그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일단 제 탓이라 여기고 해결 방법을 찾으니까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일도 잘 풀립니다."

이 달이면 수술받은 지 4년6개월째다. 내년 초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 그 후엔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두번째 생을 사는 만큼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게 제가 받은 선물을 남에게 돌려주는 길이 아닐까요."

글=박혜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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