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행복의 열쇠’ 찾기… 문학·생물학 머리 맞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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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담
도정일·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 616쪽, 2만5000원

무엇보다 반갑다. 자기 갈 길 바쁜 학자 둘이 한자리에 모여 가슴을 열고 얘기했다. 최종 목적은 행복한 삶이다. 그런데 현자(賢者)나 성인이 수없이 되풀이한 행복과 개념이 다르다. 21세기를 사는 '올바른' 방법을 놓고 토론한다.

단, 오해를 먼저 풀자. 자리를 함께한 학자들은 상아탑에 갇힌 서생(書生)이 아니다. 각자 경희대(도정일)와 서울대(최재천)에서 월급을 받는 교수지만 그들은 좁은 강의실에서 나와 우리 시대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온다. '대담'이라는 딱딱한 제목에서 책을 미리 덮을 필요는 없다. 곳곳에 유머와 기지가 스며 있어 읽는 맛이 쏠쏠하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기가 죽을 일이 아니다. 신화.문학부터 유전학.우생학까지 현대의 제반 학문을 비벼내는 솜씨가 뛰어나 소화불량에 걸릴 걱정도 없다. 알맹이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라는 부제에 들어있다. 영문학자 도정일 교수와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지난 4년간 10여 차례 만나고, 또 요령 있는 편집자들이 그들을 4차례 인터뷰한 결과를 한 권의 두터운 책으로 만들어냈다. 이른바 이종교배의 승리다.

그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신화와 문학의 가치를 옹호하는 문학도와 진화와 유전자를 신뢰하는 과학도가 머리를 맞댄다고 각별한 지혜가 나올 수 있을까. 빈사 직전의 인문학과 기세등등한 생물학 사이에 과연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성과에 밝은 인문학자(인간을 연구하는 동물)와 한때 문학의 문을 두드렸던 생물학자(동물을 연구하는 인간)가 만나니 예상 외로 실타래가 술술 풀린다. 산산이 쪼개져 좀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운 현대의 학문이 한눈에-물론 착각일 수도 있다- 들어오는 듯하다.

'대담'은 때론 백과사전처럼 느껴진다. 두 박식한 전문가들이 그리스 신화, 플라톤 철학, 기독교와 이슬람의 가르침, 다윈의 진화론, 복제인간, 유전자 결정론, 과학시대의 영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섹스와 교미 등 동서고금의 지식을 수시로 넘나들기 때문. 그런데도 '잘난 척' 하는 느낌은 전혀 없다. 각자 자신의 한계와 상대의 장점(당연, 그 역도 성립한다)을 인정하면서 한치 앞도 가늠하기 없을 만큼 휙휙 돌아가는 요즘 세상을 뚫어보는 '로드 맵'을 제시하는 까닭이다. 다소 빗나간 얘기지만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참고할 대목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유컨대 '두터운' 삶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면 3다(다양성.다수성.다원성)의 세계다. 돌려 말하면 '관용'이다. 인간이 동물에 대해 독점적 우위를 주장하지 않고, 미국이 나머지 세계에 대해 폭력을 일삼지 않고, 남성이 힘이 세다고 여성을 짓누르지 않는 세상이다.

정체 모를 DNA부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진화해온 과정은 다양성을 실현하려는 힘겨운 역정이었으며, 숱한 신화와 종교, 문학이 궁극적으로 찾아낸 것도 '나와 다른 너'의 인정이다. 유전자가 똑같은 쌍둥이마저 성격이 다르지 않은가. 자기만 알면서 자연을 망쳐온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주변과 어울리는 '공생하는 인간(호모 심비우스)'이 막 탄생하려 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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