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원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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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따지고보면 임금이란 애시당초「인간적」인것과는 거리가 먼 성질의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은 오늘의 대량생산체제아래서 퇴색된 노동의 의미를 볼때 더욱 두드러진다. 생산의 도구들을 지배했던 노동이 오늘날에는 스스로 도구화되고 부품화·탈개성화되는 추세에서 노동은 더이상 신성함을 주장키어려워졌고 얼마간의 현금으로 그댓가가 계산된다해도 이상할것이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임금노동이 처음 출현했던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같다.
산업혁명기의 휴머니스트들이 그토록 개탄했던 노동의 인간소외도 그 맥락에서는 오늘의
현실과 크게 다를바없어 보인다. 그들은 봉건체제의 해체와함께 생산수단으로부터 박리되면서 더이상 자유롭지 못하게된 노동의 소외를 애석해했고 중세장인의 창조와 자유를 더 부러워하기도했다.
그러나 오늘에와서 정작 자주 문제되는것은 이런 한가한(?)가치론보다는 오히려 임금 그 자체인것같다.
임금은 그런 자체의 속성으로보아 언제나 냉화의 게임이다. 그래서 이 게임의 룰을 둘러싼 각축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때로는 대립하며, 때로는 협조적으로 시대마다,사회마다 상황의 룰이 정해졌지만 그 바탕은 역시 그사회의 역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역관계에 가장큰 영향력을 미치는것은 바로 정부고 영향력의 대부분은 실업해소와 소득불균형의 시정에 투입되는것이 선진경제의 경험이다.
물론 최근의 흐름은 실업이나 소득편재보다 인플레에 더집착한다. 그래서 임금을 비롯한 요소가격을 억제하는 움직임도 없지않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은 국민소득의 7O%이상이 임금이다. 우리는 아직 50%에도 미달이다. 그런데도 경제정책을 말은 사람들은 예외없이 임금통제를 바라거나 내세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물가지수안정을 위해 눈에 안보이는 근로자의 임금을 규제하는것이 손쉽다는 생각을 하고있음이 분명하다. 임금동결의 논리는 정연하다. 임금인상이 인플레의 주요인이므로 물가안정세의 정착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하곡과 추곡·예산까지 동결됐다.
뒤의 것들은 정부의 고유업무라 하더라도 임금까지 정부가 앞장서서 직접 규제하겠다는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럽지못한것같다. 가이드라인의 제시는 몰라도 직접 개입은 그부작용이 너무 커질수있음을 외면한 것이다. 근로자의 단체교섭능력이 거의 무시할만큼 악화돼있는 현실에서 정부개입은 결정적 역할을 할것이 분명하다.
이경우 저임해소나 임금격차완화라는 노동정책의 가장 중요한 당면 목표는 어떻게 할것인가.
물가를 안정시키기위해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생각자체도 이론적으로 명확히 정당화되기 어렵다. 임금이 중요한 코스트 요인임에는 분명하나 일반의 통념처럼 물가와의 연관이 현저한것으로 밝혀진 보증자료는 많지않다. 오히려 한은의 단기계량모델에서는 임금을 포함한 공급부문이 지극히 단기적인 인플레요인일뿐 장기적으로는 통자등의 수요부문에 더 크게 영향받는것으로 밝히고 있다.
더우기 노동경제학회의 논문들은 임금의 물가영향도에 비해 물가의 임금영향력이 4∼6배에 이른다는 충격적 계량분석결과를 발표한바있다. 이런 일련의 최근 학계논문들은 임금에 대한 일반적고정관념을 재검토하게 만든다.
그뿐이 아니다, 노총조사에따르면 10만원 미만의 근로자가18·7%, 30만원 미만이 80%나되는 임금구조를 외면할수없다.
이들 저보근로자들은 노동의 윤리적가치나 인간소외 이전에 생계비의 직접적 위협아래 놓여있다. 임금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이런 소득편재의 시정을 위해 발휘돼야한다. 그것이 본원적 정부기능이다. 더우기 정부는 연초이래의 일관된 동결논리와는 걸맞지않게 연말즈음해서 쌀값을 비롯해 각종 공공요금을 계속해서 올리고있고 독과점을 .비롯한 일반물가인상까지 허용하고 있다.
지난 10월 현재 이미 근로자의 생필품을 중심한 생계비지수가 10%나 올랐다는 노총의 자료도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존한 임금원죄론보다 우리의 임금구조가 안고있는 근본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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