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쳇바퀴 일상이 지겹다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사랑하는 연인의 발을 밟아라
알랭 르 니네즈 지음
임희근 옮김, 현대문학

몹시 화날 때 웃기, 일기예보 끊기, 기다리던 버스 올라타지 않기, 교통체증 속에 차를 버려두기, 지갑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기, 길에서 만난 누군가를 따라가기….

뭘 하려는 것 같습니까? 프랑스 철학자가 일러주는 '일상을 모험으로 만드는 58가지 방법'에 있는 것들입니다. 보통사람의 생활은 진부하고 남루합니다. 버스나 지하철로 출근해 매일 하던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TV를 끼고 삽니다. 늘 반복되는 집안일은 돌아서면 쌓이고, 해도 해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똑같은 상황을 경험한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느낄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오지 탐험을 할 기회는 꿈도 꾸지 못합니다. 형제나 부모와 오래전에 헤어진, 기구한 사연도 없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를 찾고 싶어도 유명 연예인들에게나 차례가 갑니다. 로또? 어느 세월에 당첨돼 팔자가 확 바뀌겠습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지은이의 제안을 몇 개만 따라 해도 삶을 신비하고 경이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답니다.

짜증나는 광고를 무릅쓰고 매일 지켜보는 TV의 일기예보를 끊어 봅시다. 처음엔 상당히 고통스러울지 모릅니다. 금단현상도 느낄 겁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고, 비가 오면 우산을 가지고 외출하고, 외출 중에 비를 만나면 젖어도 보는 일이 신선하게 다가올 겁니다. 지갑을 안 가지고 나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땡전 한 푼 없이 외출해 봅시다. 하루 종일 도심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끼니도 거르고, 진열장 앞에서 홀린 듯 바라도 보고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주머니에 그 뭔가가 가득 찬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움직이기조차 싫다면 '소유한 것의 가짓수 헤아려 보기'도 괜찮을 듯합니다. 건강한 몸이 있다, 돈이 좀 있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 등등 찬찬히 내가 가진 것을 꼽아 보는 겁니다. 가진 것이 정 없다고요? 그럴 리가 있나요? 걸을 수 있는 두 다리, 가을 단풍을 볼 수 있는 두 눈, 이것저것 맛볼 수 있는 혀 등은 누구 것입니까? 이걸 해보면 우리가 뜻밖에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 몇 분만이라도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모험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먹기 따라서 하루하루가 새롭고 자신이 달라 보일 겁니다. 단 책을 읽으면서 우리 현실이 프랑스와는 약간 다르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발을 멍이 들도록 질끈 밟고 나서 그윽하게 "사랑합니다"라고 한 뒤의 결과는 책임 못 집니다.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