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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절 늘 먹었던 보리죽이 진짜 절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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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성우 스님은 “음식을 만들 때는 간을 잘 맞춰야 한다. 볶는 음식도, 묻히는 음식도, 생으로 하는 음식도 간이다. 그게 정성이다. 마음공부도 믿는 마음, 모자람을 아는 분한 마음, 모르는 걸 묻는 마음으로 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청=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남 산청의 대원사는 석남사(울산)·수덕사 견성암(예산)과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이다. 사찰음식과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하다. 대원사 된장과 송차(松茶)는 손꼽힌다. 24일 서울에서 꼬박 4시간30분을 달렸다. 산을 넘고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 대원사로 갔다. 일주문에는 ‘방장산 대원사(方丈山 大源寺)’라고 적혀 있었다. 산청 일대에서는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부른다. ‘산 중의 산’이란 뜻이다.

 대원사의 최고어른인 선원장 성우(性牛) 스님을 만났다. 올해 93세인 노장 스님은 정정했다. 요즘도 공양(식사) 시간을 빼면 거의 참선과 독경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가 공양간에서 일했을때는 ‘대원사 밥맛’의 소문이 자자했다. 그에게 ‘사찰음식에 담긴 정신’을 물었다. 노스님은 “다 시시한 이야기야”라며 절집의 ‘국제시장 시절’부터 풀었다.

  - 1943년, 일제 식민지시대에 출가했다.

 “그때 머리 깎으려고 수덕사 견성암으로 갔다. 거기서 일엽(1896~1971) 스님의 상좌(제자)가 되려고 했다. 그런데 안 받아주더라. 부모님 허락을 받아서 오라고 하더라.”

 여류문인이던 일엽 스님은 한국 근대 여성 화가 나혜석과 함께 신여성의 대명사였다. 그를 두고 ‘수덕사의 여승’이란 유행가까지 나왔다. 성우 스님은 스무 살 때 출가했다. 2년 뒤에 해방이 됐다.

 - 당시 사찰음식은 어땠나.

 “말도 마라. 절집에는 그때 먹을 게 없었다. 양식이 없어서 선방에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 방부(안거 때 수행자를 받는 일)도 못 받았다. 그럼 수행하러 왔던 사람들이 전부 울면서 돌아갔다. 그게 맺혀서 만공 스님이 논을 조금 사놓았다. 거기에 우리가 직접 모심기를 했다.”

대원사 법당 뒤의 장독대. [산청=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절집에선 주로 뭘 먹었나.

 “조그만 공기에 보리쌀을 갈아서 죽을 쑤어서 먹었다. 포기김치는 1년 가도 구경도 못했다. 다 낱장 배추로 담근 김치뿐이었다. 그리고 상추장과 막된장찌개. 딱 세 가지였다. 대중공양을 해도 과일이나 떡은 아예 없었다. 그때는 미역국과 찰밥이 가장 화려한 공양이었다.”

 어쩌다 절에 손님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때는 스님들이 자기 밥그릇에서 각자 한 숟갈씩 덜어냈다. 그럼 밥이 두 그릇은 나왔다. 성우 스님은 “그걸로 손님 대접을 했다”고 했다.

 - 만공 스님 밥상도 그랬나.(당시 만공 스님은 수덕사의 수장인 조실이었다.)

 “만공 스님께는 서울 신도들이 많았다. 당시 궁궐 나인을 하다가 중이 된 사람도 꽤 있었다. 그들이 특별공양을 올려도 두부찌개와 미역국이 최고였다. 그건 정말 어쩌다 나오는 귀한 음식이었다. 간식거리도 없었다. 만공 스님이 간식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한국전쟁과 근대화 와중에도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성우 스님은 “음식은 소박해야 한다. 요즘은 사찰음식이라고 하는 게 너무 화려하다”고 지적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도(道)를 위한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마음일 때 비로소 사찰음식이 된다. 음식은 소박해야 하고, 또 적당히 먹어야 한다.”

 - 사람들은 식사할 때 ‘적당히’를 찾기가 참 어렵다. 어디가 ‘적당히’인가.

 “배가 고프지도 않고, 배가 부르지도 않은 게 ‘적당히’다. 그게 중도(中道)다. 똑같은 음식도 적당하면 약이 되고, 과하면 독이 된다. 풍선에 바람을 잔뜩 넣어봐라. 빵빵해진다. 그럼 주물럭거리기가 어렵다. 사람의 위장도 똑같다. 빵빵해지면 주물럭거리기 어렵다. 약간 바람이 빠져야 위장이 운동을 한다. 뭐든지 중도를 찾아야 한다.”

 성우 스님은 식사할 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분수에 맞는가,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음식을 먹는가를 스스로 물어보라고 했다. “음식에는 햇볕과 비, 농부의 땀이 녹아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하나가 된다. 자연과 하나 되고, 우주와 하나 된다. 그 하나됨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거다. 그게 사찰음식의 정신이다. 그걸 놓치고 맛과 모양의 화려함만 쫓아선 곤란하다.”

산청=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우 스님=1922년 충남 서산 출생. 스무 살 때 출가. 수덕사 견성암에서 일엽 스님과 한 선방에서 공부. 현재 산청 대원사 선원장. 무릎수술을 받기 전인 91세까지 하안거와 동안거 때 선방에서 수좌들과 함께 좌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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