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짜근한 캔커피를 좋아하고 CNN 뉴스나 교육방송의 해외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팝송을 흥얼거리고 짬이 나면 테니스를 친다. 영어와 일어로 된 원서를 거침없이 읽어가고 회화도 유창하다. 양복을 입을 땐 늘 와이셔츠 줄을 빳빳이 세운다. 면바지를 입고 운동화 신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932년생. 올해로 83세인 이용수 할아버지 얘기다.
그는 다음달 12일부터 17일까지 대구 엑스코 등에서 열리는 ‘2015년 세계물포럼’의 최고령 통역 자원봉사자(전체 자원봉사자 432명)다. 행사장 입구에서 170개국 3만5000여 명의 외국인을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맡는다.
이 할아버지는 영어와 일어 2개국어를 한다. 쓰고 읽고 말하기 모두 유창하다. 그래서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때는 일본어 통역 봉사를, 2010년 대구세계소방관경기대회와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는 영어 통역 봉사를 했었다.
그는 6·25 이전 세대인 또래 80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 후 중학교를 다닐 때 한국으로 왔다.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후엔 영남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졸업했다. 이후 공군 K-2 비행단에서 영어번역문관을 지냈고, 경북 포항과 영주 안동에서 중·고등학교 영어교사를 10년 이상 했다. 1986년부터 97년까진 구미 LG일렉트로닉스·실트론에서 근무했다.
25일 찾은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집은 80대 노인의 집이 아니라 한창 연구에 몰두하는 젊은 학자의 집 같았다. ‘1971년 초판’이라고 쓰인 낡은 영어 사전, 일본어와 영어, 한문으로 쓰인 서류 뭉치 등이 집안에 가득했다. 거실에도 안마의자나 지팡이, 약봉지 대신 서류뭉치와 책이 쌓여 있고, 테니스 라켓과 테니스 공이 집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어와 일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세계물포럼 통역 봉사에 임하는 각오를 전했다.
“80대 한국인의 높은 지적 수준을 외국인들에게 통역 봉사를 통해 직접 보여줄 겁니다. 찬란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영어나 일어로 소개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대구=김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