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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칼럼]반퇴시대와 부동산 전략…어떤 선택 취해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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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대학생 때 친구에게 들은 얘기 한 토막. “보통 사람들 사이에는 인생 성공의 차이가 방 한 칸 차이”라는 얘기였다. 재테크에 성공했으면 방 네 개짜리 40평대 아파트에 살고,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면 방 세 개짜리 국민주택규모에 살 것이란 얘기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기도 했다. 참 맞는 말이었다.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마련해봐야 방 한 칸 차이일테니 너무 아등바등할 필요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잣대로 성공을 얘기할 수 없게 됐다. 세월이 변해 이제는 지역에 따라 아파트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강남의 방 두 칸짜리 아파트가 강북의 방 네 칸 아파트보다 더 비싼 경우도 많다. 재테크의 성공이 방 수나 평수가 아니라 주택가격의 절대값이란 얘기다. 지난 30년 간 이런 변화는 반퇴시대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을까.

우선 아파트는 크게 양극화되고 있다. 블루칩과 옐로칩 같은 관계다. 2007년 부동산시장이 냉각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 버블 세븐 지역 가운데 분당, 용인, 목동 같은 곳은 상당히 하락한 채로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강남은 조금 상황이 달라 보인다. 정점을 찍었던 2007년 대비 기준으로는 아직도 낮은 수준이지만 강보합 상태를 보이고 있어서다. 한국의 특수한 사회ㆍ경제 구조로 인해 희소가치가 집값을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야를 더 넓히면 거주 환경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곳들은 인기가 시들지 않는다. 반포 같은 곳도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이처럼 부동산시장이 침체돼 있으면서도 국지적으로 차별화하는 양상은 일본에서도 나타났었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의 집값은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렸지만 전통적인 인기지역인 신주쿠, 아자부주방 등의 인기 주택가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진척되면서 여전히 입주희망 1순위 지역으로 꼽힌다. 이에 더해 도심 재개발로 주거환경이 개선된 곳도 인기지역이 되면서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부동산 수요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이 침체라는데도 일부 지역은 가격 변동이 크지 않거나 오히려 소폭 회복하는 양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퇴시대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블루칩이 아닌 옐로칩 주택은 보유하고 있어도 계속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의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것처럼 저성장 시대에는 비인기 지역 주택은 거주 목적이라면 모르겠지만 투자가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할 듯싶다. 그렇다고 하나 있는 집을 매도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집 없이 전월세에 전전하면 이사비용ㆍ부동산수수료 말고도 정신적 피로감도 감당해야 한다.

요즘 같아선 오히려 전세보다는 자가를 보유하는 게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는 길일 수도 있다. 전세가 집값대비 70%를 돌파하면서 매수세가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져 집값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를 갖는다면 어떨까. 주가ㆍ금리와 마찬가지로 집값도 예측만 할뿐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집값이 상당한 투자수익을 가져다줄만큼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면 반퇴시대에는 집은 투자 목적보다는 거주 목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자신이 보유한 집이 옐로칩이라고 판단되면 그런 점을 감안해 노후 설계를 해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집은 그냥 생활 터전이라고 생각하고, 노후 생활비는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부동산이 더 이상 노후의 버팀목이 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수요가 예전만큼 못다하는 점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상황에서는 가격상승을 부추길 에너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주택은 노후에 현금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부동산’이기 때문에 살고 있는 집에서는 현금이 나오지 않는다. 블루칩이든 옐로칩이든 집에서 현금이 나오게 하려면 유동화해야 한다. 대표적인 유동화 수단이 주택연금이다. 산처럼 꿈쩍도 않는 그냥 건물일 뿐인 주택에서 화수분 같은 연금(annuity)이 나오게 하는 금융기법이다.

부동산이 더 이상 재테크 수단이 안되는 데도 현실은 갑갑하다. 국내 가계 자산의 70% 이상이 여전히 부동산이고, 그 부동산은 곧 주택이다. 퇴직한 베이비부머들 상당수는 평생 아파트 한 채 마련한 게 고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현금 흐름이 확보되지 않으면 주택은 노후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 그 집을 팔아서 작은 곳으로, 교외로, 지방으로 옮기지 않는 한 그냥 주거공간일 뿐이란 얘기다. 보유한 주택을 어찌 활용할지가 반퇴시대 퇴직자들이 풀어야 할 또하나의 숙제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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