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전래 200년의 최대 경사|북한에도 평화의 복음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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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살아있는 「베드로」인 로마 교황「요한·바오로」2세-.
그는 세계 6억 가톨릭인구의 지도자일뿐만아니라 탁월한 금세기 전인류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하다.
교황「바오로」2세의 방한은 종교적으로는 양떼를 찾는 목자로서의 사목방문이다.
그러나 사목방문이외의 기대효과도 크다.

<방문의의>
교황「바오로」2세의 한국방문은 우선 최초의 로마교황 방한이라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지 2백년이 됐고 로마가톨릭이 2백64대째의 교황을 맞는동안 한국을 찾는 교황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단순한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로만 국한할수없는 그의 세계지도자적 비중이다.
지난 78년10월 즉위이래 30여개국을 방문한 교황「바오로」2세는 가는곳마다 교회를 넘어선 범국민적 영광을 불러일으켜왔다.
셋째, 남북분단의 현실에 메아리질 육성의 복음이다.
그는 교황즉위식에서 그리스도를위해 전세계는 정치·경제·문화의 장벽을 활짝 열어놓으라고 촉구했다.
그는 「마르크스」적 사회분석과 계급투쟁을 배격하면서 사제들에게 파당정치에 말려들지 말고 수도생활의 영성적본직을 우선 하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끝으로는 정신의 갈증을 풀어줄 복음의 메시지 선포-.
그는 거듭 인간사회를 지탱할 정신바탕을 확고히하는데 힘쓰겠다는 교도방침을 밝혔고 『자비로운 사랑만이 인간의 행복과 인류생존에 이바지하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해왔다.

<방문목적>
교황「바오로」2세의 방한목적은 아주 좁은 의미로 보면 한국천주교 2백주년 축하다.
물론 교황 방한의 대부분의 시간은 천주교행사로 채워질게 틀림없다.
교황참석 중요행사는▲한국천주교순교자 1백3위 시성식▲전국사목회의개막식▲2백주년기념 전국대회등-.
이밖에도 지방교구와 한국의 곳곳을 찾아 복음을주어 그리스도의 참된평화와 희망을 선물한다.
그러나 교황「바오로」2세의 한국방문은 이같은 사목적 목적에 못지않은 정치·경제·사회에의 메시지에도 비중이 크다.
그는 한국방문에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혜를내려주도록 매일 기도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제1회칙(79년3월)에서 자원낭비, 소비주의와 빈부격차, 자유의 남용과 박탈, 경제제1주의등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제3회칙(81년9월)에서는 『인간노동은 사랑과 봉사로 세상을 변혁시키는 진정한 소명이며 기도와 노동이야말로 인간구원의 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교황의 면모>
폴란드의 공업도시 크라쿠프 대주교로 있다가 교황이된후 두 번에 걸친 그의 모국방문은 공산치하의 폴란드인들에게 자유화의 열풍을 불어넣기도했다.
1920년 바도비치에서 출생한 「카롬·요셉·보이티야」는 대학에서는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나치 독일의 폴란드 점령전까지는 「예비엔」이라는 필명으로 시도 쓰고 연극동우회 배우로 활약도 했다.
그는 운동에도 취미를 가져 축구·하키·스키·수영·커누·등산 등으로 강인한 체력을 가꾸었다.
소련군에 점령당한 폴란드에 공산정권이 세워지자 「보이티야」신부는 동료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귀국, 민족주의자로서의대공산투쟁을 시작했다.
1958년 38세의 나이로 주교가됐고 64년 대주교, 68년 추기경서임을 받았다.
그는 78년 교황피선후의 추기경단 회견을 통해 밝힌교도방침에서 『이순간 본인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불의와 차별을 받고 양심의 자유와 종교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는 모든사람들에게 손을 뻗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정치적 투사가아니다』라는게 교황「바오로」2세의 분명한 목자적 정치관이다.
그는 가톨릭교회법 개정과정을 통해 「빈자의 신」을 내세운 해방신학의 이론을 강력히 경계하면서 청소년선도등과 같은 봉사자로서의 교회소임을 강조했다.
신학노선의 입장에서는 교회의 세속주의를 배격하고 근본교리의 가치를 고수한다.[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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