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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세 화백 작품전서 백수 기원 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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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여무(女巫) 정옥이씨가 '전혁림 화백 100수(壽) 기원 굿' 을 하고 있다. 뒤에 인간문화재 정영만씨의 악사팀이 보인다. 안성식 기자

"여러분, 오구굿 아시죠? 죽은 사람을 위한 굿판이라고요? 살아 있는 분을 위해 벌이면 오구대왕의 도움으로 100세까지 천수를 거뜬히 누립니다. 그래서 산오구굿이지요. 호남에서는 산씻김굿으로 하던가요? 이제 '91세 청년' 전혁림(사진) 화백님을 위해 걸진 굿판을 놀아볼 작정이니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12일 오후 3시 경기도 용인시 영덕리 이영미술관(관장 김이환) 잔디공원. 500평 공간에 때 아닌 굿판이 벌어졌다.

이곳에서 열린 전 화백 신작전 '구십, 아직은 젊다'의 오프닝 파티를 겸한 '전 화백 100수(壽) 기원 굿 공연'. 초청팀은 전 화백의 고향 통영(현 충무시)의 남해안별신굿보존회. 인간문화재 정영만씨의 악사팀과 여무(女巫) 정옥이씨가 신명을 돋웠다. 재담꾼 저리가라하는 사회자는 공연기획자 진옥섭(전 KBS PD). 무대 옆에 제주(祭主) 김 관장과 전영근씨 등 전 화백의 자손들까지 도열했고, 마당에는 관람객 200여 명이 시루떡과 막걸리를 들며 진기한 구경에 빠져들었다. 바로 한 시간 전 예고 없이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다녀간 참. 분위기가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하이라이트는 부정굿(굿판 정화 의식), 제석굿(구경꾼 재수를 비는 의식)에 이은 오구굿 순서. 지옥세계를 관장하는 열시왕(10명의 대왕)에게 100수를 축원하는 대목. 때 맞춰 정정한 걸음걸이로 나온 전 화백이 굿판 관례대로 종이 고깔을 쓴 채 무대 옆에 좌정했다. 이때 쑥물로 몸을 정화한 축하객들이 무대로 나와 화단 거목에게 깍듯한 예우를 갖춰 절을 올렸다. 분위기를 띄운 것은 사회자의 만담형 해설.

"열시대왕은 '글로벌 대왕'입니다. 본래 힌두교의 신들이었다가 불교에 귀의했더랬는데, 오늘 굿판에까지 마실 나오셨으니까요(박수와 환호성). 그런데 여러분, 통영이 무슨 공간인지 아세요? 코발트 빛의 천지인 남쪽 바다를 마중 나가는 1번지 고장이란 뜻이죠. 이제 세상의 모든 빛을 그 뛰어난 화폭에 담으실 걸로 우리는 믿습니다."

김 관장은 "전 화백의 세계는 고향 통영과 전통 민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조색인 남빛 코발트 블루가 장관을 이룬다. 그런 거목의 만수무강을 전통 굿판의 방식으로 빌어 드리고 싶었다 "고 말했다. 김 관장은 한국화가 고(故) 박생광의 만년을 도운 패트런(후원자)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0월 '큰 무당' 김금화에게 탄생 100주년을 맞는 박생광의 넋을 위로하는 굿판을 벌였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미술관을 찾아 전 화백과 굿판의 정영만씨 등을 격려했다. 일행을 인근 갈비집으로 초청해 점심을 함께 들며 "화가 피카소가 정력의 화가라지만, 전 화백님의 에너지보다는 못하다"면서 "부디 오래 사시라"고 축원했다. 대통령은 세 시간가량 자리를 함께한 뒤 굿판 직전에 자리를 떠났다.

이영미술관은 8000평 규모의 야외미술관. 국무총리실 기획조정관 등 공직과 LG레저-효성어패럴 사장을 역임한 김 관장이 양돈 축사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 4년 전 개관했다. '구십, 아직은 젊다'가 이 공간에서의 마지막 기획전이다. 아파트 신축에 밀려 내년 5월 바로 이웃한 공간에서 재개관한다.

이영미술관(용인)=조우석 문화전문기자 <wowow@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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