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해고 쉽게' 대연정 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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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정책을 합의했나=합의안은 침체에 빠진 독일 경제를 살리기 위한 회생책을 담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불을 지핀 사회경제 개혁의 강도를 한층 높여 체질 개선을 하겠다는 의도가 곳곳에서 읽힌다. 사민당이 주장한 부유세 도입도 채택됐다.

메르켈 총리 지명자는 "일자리 창출을 연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10%가 넘는 실업률을 낮추는 데 성패를 걸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 주는 여러 가지 조치가 마련됐다. 해고 보호 규정이 완화돼 앞으로 기업주는 채용 뒤 2년 안에는 별 부담 없이 해고할 수 있게 된다. 회사가 임금 외 종업원에게 지급하는 연금보조 등 각종 비용의 임금에 대한 비중도 40% 이하(현재 41%)로 낮추기로 했다. 기업이 부담하는 실업보험 요율은 6.5%에서 4.5%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노동시장은 상당히 유연해질 전망이다. 또 경제 활성화를 위해 내년에 250억 유로(약 31조원)를 연구개발(R&D) 부문에 투자하기로 했다.

내년에 연금 인상이 동결되는 등 사회보장은 일부 축소된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은 2035년까지 현행 65세에서 67세로 높이기로 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세금 감면과 정부 지출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2007년부터 부가가치세율을 현행 16%에서 19%로 올리기로 했다. 사민당이 총선에서 공약한 부유세 도입도 채택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연간 25만 유로(부부의 경우 50만 유로)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의 최고 세율은 42%에서 45%로 높아진다.

◆ 미국과 잘 지내기=외교 분야에서는 유럽 통합과 대서양 동맹을 '독일 외교의 두 축'이라고 규정해 소원했던 대미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했다. 그동안 슈뢰더 총리가 러시아나 프랑스와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오던 것을 비판하던 메르켈 총리 지명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문제는 어정쩡하게 봉합됐다. 합의문에는 터키와의 긴밀한 관계가 독일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하면서도 EU 가입이 보증된 것이 아니라고 언급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번 협상 결과를 놓고 여론은 다소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경제계에서는 친기업적인 노동정책은 환영하면서도 부가세 인상이 내수 부진을 부추길 것으로 우려했다. 노조와 사회단체는 복지 축소에 항의했다. 자민당 귀도 베스트벨레 당수는 "대연정은 사람만 바꿨을 뿐 정책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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