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조작한 前 NYT기자 뉴스위크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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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제이슨 블레어(27) 전 뉴욕 타임스 기자의 기사 조작 사건은 출세에 눈이 먼 젊은 기자의 그릇된 직업관과 이 신문의 '제왕적' 편집인인 하월 레인스가 추진해온 '스타기자 시스템'의 합작품이라고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5월 26일자)가 19일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블레어 주변 인물들과의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 그가 이미 대학학보사 기자 시절부터 허위기사를 써 왔으며 약물중독 등 정신적 문제를 겪어왔다고 밝혔다.

이 잡지는 이런 경력을 지닌 블레어가 세계 최고의 권위지인 뉴욕 타임스에서 출세가도를 달려온 데는 레인스 편집인의 독선적인 편집국 운영 방침도 큰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블레어는 기자를 꿈꿔왔다. 블레어는 고등학생 때 고향 버지니아주의 주간지 센트레빌 타임스에서 인턴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당시 편집장은 그에 대해 "미소가 매력적이지만 신뢰하기는 힘든 기자였다"고 회고했다.

메릴랜드대에 진학한 블레어는 학보 신문인 '다이아몬드 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하루는 블레어가 마감시간을 넘기고 행방을 감췄다. 블레어는 뒤늦게 나타나 "기숙사 룸메이트가 가스 버너를 켜놓고 나가는 바람에 가스에 중독될 뻔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기숙사에는 가스 버너가 아예 없었다고 옛 동료들은 주장했다.

1998년 뉴욕 타임스의 자매지인 보스턴 글로브에서 뉴욕 타임스로 옮겨온 블레어는 2001년 정식 기자로 채용됐다. 당시 사내에선 반대여론이 많았지만 존 렐리벨드 당시 편집인은 "(인종적) 다양성 존중 원칙"을 내세워 채용을 결정했다.

블레어는 처음 뉴욕시의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메트로부에서 일하다 스포츠부를 거쳐 전국부에 합류했다. 전국부는 메트로부 등에서 능력이 검증된 고참기자들만 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레인스 신임 편집인은 블레어의 전국부 합류를 밀어붙였다.

2001년 9월 취임한 레인스 편집인은 블레어 기자의 파멸을 몰고온 배경을 제공했다. 남부 출신으로 권위적인 성격의 레인스는 취임하자마자 뉴욕 타임스의 분위기를 확 바꿨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몇몇 기자를 고속 승진시키는가 하면 데스크를 엄격하게 몰아붙였다. 뉴욕 타임스의 자유롭던 의사소통 구조는 붕괴됐다.

전국부로 자리를 옮긴 블레어는 직감적으로 분위기를 파악, 엄청난 분량의 기사를 써댔다. 그러나 전국부는 블레어의 파멸을 재촉하는 자리가 됐다.

기사 압박감에 시달린 블레어는 더욱 대담하게 기사를 조작.표절하기 시작했고 모든 사건들과 자신을 연관짓는 증세까지 보였다. 한 동료는 블레어가 "우주왕복선이 폭발했을 때는 아버지가 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결국 블레어는 기사 조작ㆍ표절이 들통나 사직했고 뉴욕 타임스는 1백50년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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