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방송 송출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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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산가족상봉 2진 둘째 날인 10일 북측 안내원이 행사를 취재하던 YTN 이모 기자를 저지하며 방해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취재하던 남한 TV방송사의 위성송출을 가로막아 방송차질을 빚는 사태가 빚어졌다. 북한은 또 여기자의 취재수첩을 강제로 빼앗는 등 취재를 방해했다. 특히 북측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앞으로 흩어진 가족 상봉은 없어"라며 행사 중단까지 위협해 파문이 일고 있다.

◆ 사흘 내내 집요한 취재 방해=10일 공동취재단에 따르면 김일철 등 북측 보장성원(지원요원)은 8일 오후 12차 이산가족 방문단 첫 단체상봉을 취재해 서울에 위성송출하려던 SBS 하모 기자를 제지했다. 동진호 납북어부 정일남씨 모자상봉 보도 중 '납북자'표현이 몇 차례 등장하자 문제 삼은 것. 남측 기자들은 과거 납북자 상봉 때부터 써온 표현이라며 '사전검열'에 항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해당 기자를 숙소 밖에 나오지 못하게 위협했다. 또 통일부가 이런 기사를 사주했다며 남측 당국에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SBS는 현지보도를 하지 못했고 KBS도 납북자 표현을 뺀 뒤에야 방송할 수 있었다.

북한은 9일 오전 남북 적십자사 단장 간 접촉에서 "상황이 정리됐다. 없던 것으로 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위부원으로 추정되는 북측 관계자는 "단장 간 합의는 남측 단장이 사과한 것일 뿐"이라며 30분 만에 번복했다. 오후에도 SBS의 카메라를 가로막아 다시 현지보도를 무산시켰다.

상봉 마지막 날인 10일 오전에는 북측 요원 김광철이 작별상봉을 취재하던 YTN 여기자의 취재수첩을 빼앗아 북측 상황실로 가려다 남측에 잡혔다.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의 손을 수차례 치며 방해하던 중 항의하자 돌발행동을 했다. 북측은 3시간 뒤 연락관을 통해 사과했다.

공동취재단은 상봉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서울 귀환 후 기사를 쓰기로 결정했다. 통일부 기자단은 "언론자유를 심각히 침해한 중대 사건"이라며 북측에 사과와 책임자 문책,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 북한 왜 이럴까=남북 화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남측 언론의 비판이나 껄끄러운 보도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또 상봉장의 고령 이산가족을 고려해야 하는 남한 기자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무리한 주장을 관철해 보려는 계산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미덥지 못한 대응이 남한 언론에 대한 북한의 무례한 행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10일 브리핑에서 "남측 기자들이 취재방식에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며 북측에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뜻임을 밝혔다.

금강산=채병건 기자,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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