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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언니 후계자? 부담되지만 감사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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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소연은 아이돌 그룹에 별 관심이 없고, 대중가요보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지난 달 9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5 종합선수권에 출전한 박소연. [양광삼 기자]

“아, 그거요? 리쯔쥔이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지난 16일 사진 한 장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피겨스케이팅 기대주 박소연(18·신목고)과 중국의 리쯔쥔(李子君·19)이 함께 떡볶이를 먹는 장면이었다. “왜 걔가 SNS(소셜네트워크)에 사진을 올려서…”라며 수줍어하던 박소연은 “만나면 영어로 이야기해요. 둘 다 강아지를 키워서 그 얘기도 하구요. 리쯔쥔이 우리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해맑은 얼굴 속에선 ‘포스트 김연아’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열여덟살 소녀의 모습이 엿보였다.

 동갑내기 김해진(18·과천고)과 함께 ‘연아 키즈’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박소연은 올 시즌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국내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에서는 9위에 그쳤지만 처음으로 시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해 1차 대회(스케이트 아메리카)와 4차 대회(로스텔레콤컵)에서 5위에 올랐다. 김연아를 제외하면 한국 선수가 거둔 그랑프리 역대 최고 성적이다. “국내 대회라 그런지 4대륙 때는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이번 시즌을 돌아보면 저도 모르게 지난해보다 성장한 것 같아요. 항상 긴장하면 실수를 했고, 실수를 한 번 하면 계속 했죠. 그런데 이제는 조금 차분하게 다음 걸 하게 됐어요.”

리쯔쥔(왼쪽)과 박소연은 김연아를 존경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쯔쥔이 지난 16일 SNS에 올린 떡볶이 먹는 사진.

 박소연은 전남 나주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선수가 되기 위해 서울 유학을 떠났다. 현역 경륜 선수인 아버지 박종석(50)씨와 한국무용을 전공한 어머니 김정숙(44)씨의 피를 이어받은 덕인지 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트리플 악셀을 제외한 트리플 5종 점프를 모두 성공했고, 국가대표가 됐다.

 박소연은 오전 7시 30분 필라테스로 몸을 풀고, 오전 10시부터 태릉빙상장에서 3시간 30분간 훈련한다. 오후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 발레와 현대무용 수업도 받는다. 쉴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하루가 휙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1년에 학교에 가는 날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4일이 전부다. 다른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시험 공부는 힘들지만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친구들이 놀러다니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구요.”

 리쯔쥔과 함께 먹은 떡볶이도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이다. 박소연은 “어머니가 평소에 식단을 짜주세요. 그러다 보니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같은 분식이 먹고 싶을 때도 있어요”라고 했다. 그는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했잖아요. 성적이 나왔을 때의 뿌듯함도 있구요. 후회는 안 해요”라고 했다.

 경기 중에는 항상 밝게 웃지만 박소연에게도 어두운 구석이 있다. 그는 “피겨를 하면서 성격이 좀 내성적으로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좀 더 자신감이 있었고 뭘 해도 항상 웃었거든요. 그런데 운동을 하면 힘들다보니 웃는 것도 싫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걱정이에요”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금세 표정을 바꾸며 “우울하거나 힘들 땐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요. ‘런닝맨’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좋아하구요. 기회가 되면 나가보고 싶기도 해요”라며 깔깔 웃었다.

 박소연에게 김연아는 우상이자 선생님이며 롤모델이다. 박소연은 “포스트 김연아라는 말이요? 부담도 되지만 감사하게 생각해요. 연아 언니가 제게 ‘너 자신을 믿으라’고 했거든요.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는데, 사실 저도 언니의 자신감을 정말 닮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예뻐졌다’는 이야기에도 손사래를 치며 “저는 별로에요. 리쯔쥔이나 그레이시 골드(20·미국)가 예쁘죠. 물론 제일 예쁜 건 연아 언니에요”라고 웃었다.

 박소연에게 올림픽은 큰 선물이자 숙제다. 처음으로 선 시니어 무대가 지난해 소치 올림픽(21위)이었고, 3년 뒤 열릴 평창 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박소연은 “아직 평창엔 가 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 모습은 상상해봤죠. 깔끔하고 완벽한 연기를 해 관객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는 거에요”라고 했다. 그가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연아 언니가 좋은 성적을 내서 제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 나가 봤잖아요. 저도 후배들에게 그런 기회를 줘야죠.”

글=김효경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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