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는 미 대통령「스트롱 레이건」|지난3년간의 치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레이건」미대통령이 12일부터 2박3일간 한국을 방문하는것은 과거 어느때보다 국내외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측에선 KAL기 격추사건, 아웅산 폭발사건등 잇따른 불행한 사건뒤에 세상 국민의 관심을 모으게된 한반도의 안정문제를 우방 미국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수없다. 미국측 입장에서도 「레이건」은 국내경제의 안정과 국제무대에서의 『힘의 외교』를 과시함으로써 내년에있을 대통령선거전도 유리하게 바라볼수 있는 입장에 놓여있는 상황이다.「레이건」 대통령은 과연 어떤 인물인지, 지난 3년간의 그의치적은 어떠했는지를 총점검해본다.
「레이건」미국대통령은 12월중으로 예상되는 자신의 공식 재출마선언을 앞두고 정권이래 가장 유리한 정치적입장에 서있다.
1년전 중간선거때만해도 공화당후보들중에는「레이건」대통령의 지원연설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히려 「레이건」의 모습을보면 경제불황과 급격히 상승하는 실업률이 연상되어 표가 도망을 갈것이라는 우려때문이었다.
그러나 83년에 들어서면서 밝아지기 시작한 경제전망은 이제 가장 비판적인 분석가들조차 부인할수 없을정도로 뿌리를 내렸다. 「레이건」행정부를 괴롭혀온 실업률도 지난9월8· 7%로 내려 『「레이거노믹스」는 실업가들의 희생위에 세워진 경제회복정책』 이란 비난을 면할수 있게 될듯하다.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은 연초의 예상을 훨씬 넘어선 7%로 추계되고 있다. 개인소득의 증가와 현직 대통령에 몰리는 투표의 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한 학자는 개인당 실질소득이 2·5내지 3%증가하면 현직 대통령은 당선 안정권에 든다고 분석하고 있다.

<세가지 외교난제>
이에따라 실질소득이 3%를 넘어설것으로 보이는 현재로 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은 아주 양호한것으로 평가되고있다.
최근 「레이건」대통령은 『경제가 호전되니 「레이거노믹스」를 들먹이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여유있는 농담을 했다.
미국정지에 있어서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행정부에 쏠리는 국민의지지는 경제와 외교의 성과가 크게 좌우한다. 그러나 외교는 경제가 잘못되어 갈때 상대적으로 더 큰 비중을 갖게되기 마련인데 84년 총선때까지 현 회복세가 유지된다면 외교면에서 「레이건」 대통령이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야할 압력은 줄어들게된다.
현재 「레이건」 대통령은 레바논을 핵심으로한 중동문제, 중앙아메리카, 대소핵감축협상등 3가지의 큰 외교문제에 당면해있다. 이 세분야의 외교활동은 모두 쉽게 풀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난제들이지만 현재로서는 「레이건」의 정치운에 큰 위협이 되고 있지않다.
그 큰 이유가 지난 2개월동안에 발생한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과 그레나다 침공작전이다.
「레이건」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이두 사건을 「레이건」 의 이미지가 갖는 두가지 상반된 측면을 강조하도록 이용함으로써 「레이건」대통령의 지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KAL기사건이 나기전까지「레이건」대통령은 국내외에서 카우보이라는 별명이 나타내는 나쁜 측면, 즉 외교활동에서 무력에 너무 의존한다는 이미지를 갖고있었다. 그런 이미지는 대통령선거전에서 드러낸 강경한 반공노선과 군비증강 공약이 집권후 정책에 그대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동맹국들도 찬사>
그러나 KAL기사건에서 그는 행동면의 반격을 피하는 「말의 공세」만 강화함으로써 국제관계에서 자제력을 행사할수 있는 인물로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 우파진영으로부터는 반발이 있었지만 전체 국민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유럽의 동맹국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다.
그레나다침공은 그와 정반대의 메시지를 내외에 보냈다 .한 행정부관리는 『이제 아무도 미국을「종이 호랑이」로 보지 못할것』 이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이작전은 무엇보다도 「레이건」이 집권후 중도노선으로 좌선회하고 있다고 불만을 품고있던「레이건」의 본고향인 우파진영을 기쁘게했다.
KAL기사건 직후 『「레이건」은 말은 「처칠」처럼 하면서 행동은「체임벌린」처럼 한다』(「체임벌린」은 2차대전때「히틀러」에게 유화정책을 쓴 영국수상)고 비난했던 우파들은 요즘 그레나다침공을 열렬히 옹호하고있다.
그레나다 침공은『지난 40년동안 한번도 시원스런 승리를 맛보지 못한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 했다』고 한 행정부관리는 말했다.
83년을 맞으면서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은 이해가 「레이건」 의 정치생명을 결정하는 운명의 해가 될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이해의 성과와 정책방향이 84년 선거운동의 주조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레이건」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보인『단순한 인물』이란 이미지를 벗어나 『복잡하고 보다 현실적이며 덜 교조적인 면을 보여 주었다』고 뉴욕 타임즈지의 워싱턴 지국장「핸드리크·스미드」는 쓰고있다.
그에 따르면「레이건」은 말할때는 행동할때 보다 훨씬 더 우파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 평은「레이건」이 추진해온 정책방향속에서 입증된다.『악의 제국』으로 몰아붙인 소련과의 관계에서만 해도 곡물협정, 시베리아 송유관건설, 핵협상등 분야에서 그는 현실적인 타협을 했다. 중공관계에 있어서도 초기의 대만지원노선을 타협해서 이제는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있다.

<공약은 거의 실천>
국내 문제에 있어서도『가난한자를 회생시켜 부자를 살찌게했다』는 비난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인권에 반대하는 인사를 인권옹호의 책임자로 앉히고 복지정책에 회의를 품은 인사를 복지정책의 책임자로 앉히는 식으로 인선을 하던 초기의 우파적분위기로 본다면 그의 정책은 확실히 실용주의쪽으로 움직였음을 부인할수없다. 그것은 재출마를 할경우 표밭은 우파쪽 보다 중도에 있다는 인식에서도 왔겠지만 동시에 정치인「레이건」의 폭에서도 왔을법하다.
그러면서도「레이건」대통령은 자기가 공약한 바를 거의 실천했다. 그는 인플레를 억제하고 경제회복의 기틀도 잡았으며 국방비를 증강시키고 세금증가추세를 역전시켰다. 그런 정책추진이 수반한 사회적 희생이 얼마나 컸느냐는 앞으로 계속 논란이 많겠지만 그를 당선시킨 보수물결은 그런 실적을 성과로 평가할것이 확실하다.
정치에 있어선 1년이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다. 그 긴시간속에서 「레이건」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외교적 난제에 복병처럼 숨어있는 함정들이 어떤 예상밖의 위기를 몰고 올지 예측하기 이르지만 적어도 김포공항에 발을 디딜 순간의 「레이건」대통령의 시야에는 내년 선거의 전망이 탄탄대로로 보일게 분명하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