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은 전쟁 포기를 '포기' 할 수 있을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베 총리는 국민이 받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개헌을 추진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지난 1월 31일 소셜미디어에 두 번째 일본인 인질 고토 켄지의 참수 장면이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의 진위를 확인한 일본 정부는 “개탄스러운 테러 행위에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고 논평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TV에 출연해 “매우 유감”이라며 인질 석방을 위해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IS는 처음엔 몸값으로 2억 달러(약 2200억원)를 요구했다가 첫 일본인 인질이 참수된 후 요르단에 수감된 자살폭탄테러범 수지다 알리샤위의 석방을 요구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긴급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군의 공격행위가 헌법으로 금지됐기 때문에 언론인 고토와 그 이전에 참수된 인질 유가와 하루나의 죽음에 즉시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베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에서 비롯된 헌법상의 군사 공격행위 금지 조항을 폐지하려는 노력의 선봉에 서 있다. 일본 국민 대부분은 지금까지 그런 노력에 반대해왔지만 이번 일본인 인질 두 명의 참수로 여론이 아베 쪽으로 좀 더 기울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간주된 일본은 이번 인질 참극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은 1947년 전쟁 수행 권리와 군대 보유 권리를 공식 포기했다. 그렇다고 일본에 군이 없는 건 아니다. 육·해·공군이 다 있지만 전쟁을 치르는데 사용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냥 ‘자위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본의 지상군과 전함, 전투기는 전부 공격용 무기를 보유한다.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적에게 피해를 줄 목적으로 무기를 사용한 적은 없지만 이론상 IS 퇴치 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제정된 일본국헌법에서 ‘전쟁 포기’라는 제목으로 돼 있는 제9조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근본으로 하는 국제 평화를 진심으로 원하며 국가 주권으로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의 사용이나 사용 위협을 영구히 포기한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을 비롯한 모든 군사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아베는 헌법 9조는 그대로 두되 일본이 위협을 받는 경우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각의 결정’을 밀어붙였다. 그 결의에 따르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일본국의 존립에 위협이 있고, 둘째, 국민의 생존·자유·행복추구권에 명백한 위험이 있으며, 셋째,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에 한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아베는 지난해 그 각의 결정이 통과된 직후 “일본군의 해외 파병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일반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또 올해 초 인질 위기와 관련된 기자회견에서도 아베는 “자위권을 행사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재차 확인했다. IS가 위협인 것은 분명하지만 멀리 떨어진 일본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아베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튼 일본은 중단 없고 민첩한 대응을 보장하기 위해 안보법이 필요하다.” 이 발언은 개헌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아베는 2013년 국제관계 평론지 포린어페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 국민은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헌법 9조를 뛰어넘는 조치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자위를 위해 무력 사용권을 허용하는 문제에서 일본 국민의 지지도는 30%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북한의 공격 행위 같은 일이 발생하면 국민의 60% 이상이 무력 사용 금지가 옳지 않다고 인정할 수 있다.”

IS의 일본인 인질 두 명의 참수 후 개헌에 관한 일본 여론조사는 아직 나온 게 없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통과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각의 결정’도 과연 허용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한다. 오사카대를 졸업한 일본 전문가로 워시번대 교수인 크레이그 마틴은 지난해 기고한 글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전적으로 불법이며 일본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썼다.

아무튼 현재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IS 공습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무기가 없다. 일본 전투기는 첨단 성능을 갖췄지만 적군기에 맞서는 방어용일 뿐이며 지상 표적을 공습하는 능력은 제한돼 있다. 합법적이라고 해도 IS 공습에 일본 공군을 참여시키기는 쉽지 않고 군사적으로 유용하지도 않다.

마틴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인 대다수는 헌법 9조 개정을 여전히 꺼린다. 아베는 먼저 96조를 개정하려고 할지 모른다. 그 역시 시간이 걸리고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다.” 헌법 96조는 개헌 절차에 관한 조항으로 의회의 특별 과반수(재적원의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 헌법의 개정은 총 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국회가 발의하고, 국민에게 제안해 그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승인에는 특별 국민투표 또는 국회가 정하는 선거에서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아베는 개헌 발의 요건을 ‘중·참의원 3분의 2 찬성’에서 ‘단순 과반수 찬성’으로 완화하고자 한다.

“자위대를 파견하려면 관련 법이 필요하다”고 마틴이 말했다. “법적 근거 없이 군을 파견하려고 하면 집단적 반대에 부닥치고 분명히 소송도 제기될 것이다. 아무튼 일본 정부는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대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1991년 1차 걸프전에서 그랬듯이 미군 주도의 IS 공습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아니면 중동에서 인도주의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다. 하지만 고토의 죽음으로 끝난 인질 위기도 바로 그런 공약 때문에 비롯됐다.

아베는 지난 1월 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IS 공습으로 피해를 입는 주변 국가들을 위해 비군사적 지원으로 2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IS가 일본인 인질을 두고 요구한 몸값도 정확히 2억 달러였다. 금액이 너무 크기 때문에 IS가 몸값 지불을 기대한 게 아니며 그들은 처음부터 인질을 참수할 의도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인질들은 잔혹하게 참수됐다. 아베는 “이 행위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개헌을 강행할 수 있다면 그게 말로 끝나지 않고 행동이 따르게 될지 모른다.

글=알베르토 리바 아이비타임즈 기자, 번역=이원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