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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소기지북에 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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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규모로 봐선 월남과 비교가 안되지만 미군의 그레나다 침공은 월남전이 끝난지 8년 만에 미국이 처음으로 전투를 목적으로 해외에 출병한 기록을 낳았다. 「레이건」 미대통령은 TV연설을 통해 이 작전의 .목적이 ⓛ그레나다에 있는 1천명의 미국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②그레나다에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③카리브연안국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이 섬이 쿠바와 소련의 기지로 이용될지도 모른다는 「레이건」 행정부의 우려가 깔려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지난 3월 중미일대에 쿠바와 소련의 세력이 침투하고 있다는 증거룰 제시하면서 그레나다에 건설중인 1만피트 길이의 새 활주로의 공중촬영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일부에서는 이 활주로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여객항공 확장의 일환이라든가, 이 공사에는 미국 회사도 출자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이 활주로 건설에 쿠바가 1천만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했으며 이 활주로를 소련공군기가 이용할 수도 있고 니카라과의 좌파정권에 군사장비를 운반하는 리비아 수송기의 급유기지로 이용될 수도 있다고 보고있다.
최근 정변에서 살해당한 「비숍」 수상은 마르크시스트였다.
그는 모스크바 및 아바나와 가까운 사이였고 그레나다에는 이 두 공산국의 기술자와 군사교관들이 주둔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추종자들 보다는 온건한 마르크시스트였다.
한 예로 그는 자기가 추진하는 사회주의 경체체제 안에서는 경제의 60%를 사기업으로 보존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또 미국의 반감을 무마할 목적으로 지난 여름 워싱턴을 방문하고 당시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 「윌리엄·클라크」씨와 회담을 가졌었다.
이 방문결과 「비숍」 수상이 미국과 더 친숙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미국접근과 온건한 혁명노선에 반발한 과격파들이 최근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를 살해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니카라과에 이어 두번째로 이 지역에 친소세력이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막기위해서 정변의 혼란을 틈타 이번 작전을 한 것으로 보인다.
베이루트사태에 몰두했던 미의회에서는 그레나다 침공소식을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의회지도자들은 「레이건」 대통령이 25일 전국 TV방송으로 그레나다 침공사실을 발표하기직전 백악관에 초청되어 이 사실을「슐츠」 국무장관과 「와인버거」 국방장관으로부터 브리핑 받았다.
의희의 반응은 아직 단편적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하는 의원들은 미군이 미국시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직후 당장 철수해야 된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레이건」의 조치에 반대하는 진보적 민주당의원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신랄하다. 「로턴·차일즈」상원의원(민주당) 은 『베이루트에서 미해병의 대량 사망으로 충격을 받은 바로 다음날 그레나다를 침공하는걸 보면 미국이 승산있는 전쟁만 찾아 다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에드워드·마키」 하원의원(민주당)은 『「루스벨트」를 능가하는 새 함포외교의 주자가 나타났다』고 빈정댔다.
명백한 전쟁상태를 조성한 그레나다침공에 반발하는 의원들은 26일 「전시출병의 경우 48시간 안에 의회에 통고해야 된다」 고 규정한 「전쟁권법」 을 제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오래가야 2, 3일 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아 레바논에서처럼 「전쟁권법」 은 문제가 안될 것 같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번 작전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지역정치면에서 그레나다 침공은 미군의 개입을 싫어하는 중남미 국가에 반미감정을 부채질해서 미국의 외교노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나토우방과도 마찰이 예상된다. 「대처」영국수상은 25일 의회에서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계획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했으며 몇가지 문제점을 검토한 후에 행동을 취하라』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권유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외무성도 『어느 국가도 다른 나라 영토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고 비난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레바논사태와 함께 「레이건」 행정부가 너무 군사력 사용을 능사로 삼는다는 공박을 반대정치인들로부터 받게 되어 이 문제가 대통령선거의 주요이슈로 등장할 가능성이 확실해졌다.
그레나다에 있는 미국법원 당국자들은 미국정부로부터 무력개입을 호소하는 성명을 내달라는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고 밝히고 『미국인들은 전혀 신변위협을 받지 않았다』 고 말했다고 LA타임즈지가 보도했다.
미국정부가 침공의 첫째 명분으로 삼고있는 『미국시민 보호』 는 이 주장으로 허물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 현지주민의 이런 주장은 논란의 씨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슐츠」 장관은 브리핑에서 『만약 1천명의 미국인이 인질로 잡히든가 부상한다면 기자들은 왜 미리 강경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고 따질게 아니냐』 고 반문함으로써 그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레나다침공이 미국이익에 부합된다고 단정한 듯 하다.
약사·주요 일지
▲1498년 8월 15일= 「콜룸부스」가 처음 발견
▲1763년 2월 10일= 프랑스가 정식으로 영국에 양도
▲1974년 2월 ?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79년 3월13일= 「모리스·비숍」이 이끄는 국민혁명군, 쿠데타로 「에리크·게이리」수상으로부터 정권인수
▲79년3월22일= 미국과 영국, 신정부 승인
▲79년 4월 9일=「비숍」수상, 쿠바군 지원요청
▲83년 3월 23일= 「비숍」수상, 미국의 공격위협 이유로 군에 경계령 선포
▲83년 6월= 「비숍」 수상, 미국방문
▲10월 13일= 「비숍」 수상 가택연금
▲10월 19일= 「비숍」 수상을 비롯, 3명의 각료·2명의 노조지도자들이 군에 의해 피살됨
▲10월 20일= 24시간 통금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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