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APEC] APEC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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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APEC은 아시아와 태평양 연안국가들이 1989년 결성한 경제협력체다. APEC은 무역과 투자를 자유롭게하고 원활하게 해 역내국가들이 공동 번영을 꾀한다는 기치 아래 경제기술 및 금융협력 등 다양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외무.통상장관들을 중심으로 한 각료회의 형태로 출범했으나, 93년 미국 시애틀 회의 때부터 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회의가 추가되었다.이를 처음에는 정상회의로 부르려 했으나, 홍콩과 대만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경제지도자회의로 이름 짓게 되었다.

출범시 회원국은 미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와 한국.일본 및 아세안 6개국(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 등 12개였으나, 중국.홍콩.대만(91년)에 이어 멕시코와 파푸아뉴기니(93년), 칠레(94년), 페루, 베트남, 러시아(98년)가 참여해 21개로 늘었다.

출범할 때에는 경제협력 의제만을 다루었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경제 문제 이외에도 정치.사회.문화 등 비경제 정책현안들도 비중 있게 다루는 정책협의기구로 확대 개편됐다.

시애틀 회의에서 APEC 정상들은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태평양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한 데 이어 다음해 정상들이 만나'2020년까지 모든 회원국(선진국은 2010년까지)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무역투자 환경을 조성한다'는 보고르 선언을 채택했다. 95년의 세번째 정상회의는 보고르 목표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14개 분야의 실행 매뉴얼을 마련했다.

APEC은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처럼 역외국가가 무역이나 투자를 자유화한 혜택을 입지 못하도록 하는 '배타적'인 경제블록과는 성격이 다르다. 출범 당시부터 '개방적 지역주의'정신 아래 배타적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다자간무역체제를 강화한다는 기본정신을 지켜왔다. 그리고 자유화도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협력방식도 전원 합의제를 사용해 개발도상국 회원국들의 입장을 고려한다. 이같이 조직도 취약하고 자유화에 관한 구속력이 없는데도 APEC은 개별국으로서 또 전체로서 세계경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1개 회원국의 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41%에 이른다.

경제규모면에서 국내총생산(GDP)은 전세계 GDP의 57%를 차지하며 교역량은 세계 총교역의 45%에 이른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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