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민심 달래는 盧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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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18일 광주에서 흔들리는 호남 민심과 맞부닥쳤다.

호남 인사 소외론, 대북 비밀 송금에 대한 특검 수사, 나라종금 사건 관련 한광옥(韓光玉)전 대통령 비서실장 구속 및 김홍일(金弘一)의원 소환설에 민주당 분당(分黨)설까지 나오는 뒤숭숭한 와중에서였다.

여기에 盧대통령의 방미 발언과 관련한 한총련 반전.반미 시위까지 겹쳐 광주 방문길은 어수선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盧대통령은 예민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가급적 피한 채 '호남 민심 다독이기'에 주력했다.

5.18 기념식 후 두번째 일정이었던 지역 기관장들과의 오찬 간담회는 참석자들의 차량이 시위대에 가로막히는 바람에 盧대통령이 한시간 이상이나 기다리는 일이 빚어졌다. 간담회는 참석 예정자(70명) 중 40명만 나온 가운데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盧대통령은 "지역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한 정당이 (한 지역에서) 독식해선 안된다는 생각"이라고만 말했다. 盧대통령은 이어 전남대에서 한 특강에서 지역주의 타파와 통합을 역설했다.

그는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이 박철언(朴哲彦)씨를, 본인이 했든 검찰이 했든 감옥으로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후 대구.경북이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임기 5년 내내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며 "부산에서도 영도다리 밑에 손가락 떠돌아 다닌다는 얘기들이 재미있게 회자됐는데 그것도 김영삼 정부에 치명적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영남인들이) 무슨 일을 해도 수용하지 않았고, 몇몇 사람을 요직에 기용해도 변함이 없었다. '호남이 다 해먹는다'고 해서 (내가) 부산에 가서 '해먹으면 얼마나 해먹겠느냐'고 해도 부산 사람의 상실감은 극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盧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처음에 나타난 것과 같은 현상, 김대중 정권 초반에 나타난 현상이 (참여 정부에서도) 나타나 당혹스럽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호남 소외론에 제동을 걸었다.

아울러 盧대통령은 "전 정부에서 일하던 사람을 조사해 잡아넣고, 청와대가 나서서 사정이라고 해서 공직자 기강을 잡느라고 골프 (못치게 하는) 얘기가 나오고 하는데 외국에서 그것이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면서 "신정권 초기 증후군 같다"고 했다.

하지만 盧대통령은 "사실 정치인이 조사받는 것을 저는 바라지 않았다"며 검찰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수사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盧대통령은 "다시 지역주의 때문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며 "90년 (3당 합당) 이후 정치적 격변에서 마음에 담아뒀던 화해와 통합, 이 목표는 결코 내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광주와의 동질감도 강조했다.

盧대통령은 "부산에서 구속된 학생들을 변론하면서 민주화운동에 한 다리를 걸치게 됐는데, 학생들에게 당시 '왜 잡혀왔느냐'고 물어보니 광주 학살의 진상을 부산 시민에게 전파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가장 큰 죄목이었다"며 "그때부터 광주는 '우리'의 문제가 됐다"고 했다.

盧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 5월의 노래, (광주)출정가, 제목은 몰라도 열몇개의 노래는 바로 부를 수 있다"고도 했다.

강민석.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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