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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처마 아래…한옥에 살아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여성중앙]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 서울 삼청동에서 공간 디자인 사무소 ‘어너더 디’를 운영하는 김경민·정세영 부부를 눈 오던 날 만났다. 이곳은 아이 둘과 고즈넉한 처마 아래 사는 그들만의 세상.

부부의 또 다른 꿈을 향해, ‘어너더 디’

아파트는 아무래도 비슷한 구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어느 정도 닮아 있다. 반면 마당을 품은 한옥의 삶은 조금 다른 형태일 것이다. 예스러우면서도 자연에 가까운 공간이라 좀 더 다이내믹한 삶이 눈앞에 그려진다. 많은 이가 한옥에 대한 로망을 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삼청동에서 공간 디자인 사무소 ‘어너더 디’를 운영하는 김경민?정세영 부부는 한옥살이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어너더 디는 ‘또 다른 꿈’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 꿈을 이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삼청동 메인 거리에서 언덕 하나만 올랐을 뿐인데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한옥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들이 사는 한옥의 일부는 부부가 직원들과 함께 운영 중인 사무실이고, 나머지는 4살배기 아들 선우와 2살배기 딸 서우가 지내는 공간이다.

두 사람은 6년 전 도심의 번잡함을 벗어나 삼청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무실 근처에 집을 마련해 지내다가 2년 전 둘째 출산을 앞두고 집과 사무실을 합쳐 한집에 두 살림을 꾸리고 있다.

정세영 실장은 여느 워킹 맘처럼 육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첫째 선우가 태어났을 때는 사무실과 근방의 집을 오갔고, 현장에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했죠. 그러던 중 둘째 서우가 생기고부터는 육아가 험난한 현실로 다가왔어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보자 결심하고 주거 공간과 일터를 합쳤습니다.”

일과 삶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지 이제 2년. 이곳은 원래 인근에 살던 주민의 의뢰로 직접 시공을 해줬던 집이었다. 마침 그 고객 부부가 장기간 해외에서 체류할 일이 생겼고, 김경민?정세영 부부가 새로운 공간을 찾고 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고즈넉한 한옥 한 채에서 네 식구가 겨울을 맞이했다.

1 거실에서 복도로 넘어가는 공간. 전통적인 수납장과 현대적인 의자가 함께 놓인 모습에서 한옥 속 모던한 삶을 사는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이 엿보인다.

2 곳곳에 놓인 두 아이의 흔적.

3 담벼락 너머로 바라본 서울의 풍경. 처마가 겹겹이 쌓여 있고 저 멀리 산이 펼쳐진 풍경은 아파트 창너머로 바라보는 도심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4 작가들의 공방에 들러 하나둘씩 모아온 도자기 그릇, 목공예 컵까지 부엌 물건에서도 부부의 취향이 느껴진다.

서로 다른 감각이 내는 시너지로 만든 공간

집과 일터가 한 공간에 있다 보니 가끔은 불편할 때도 있지만, 두 사람은 소유가 아니라 장기간 빌려서 사는 것이라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이곳만의 재미를 느끼며 라이프스타일을 맞춰가며 살고 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는 법을 배우고 기다림의 미학을 느끼고 있다.

한옥 내부는 ㄱ자 형태로 거실 옆에 붙은 침실을 중심으로 한쪽은 직원들의 사무실, 다른 한쪽은 부부의 작업 공간으로 구성했다. 특히 침실 안에는 복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있는데 그곳을 따라 올라가면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가득한 다락방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올라가 혼자서 공상을 즐길 때도 있고 때로는 온 가족이 옹기종기 누워서 잠을 청한다. 짐을 넣어놓는 창고 용도로 전락하기 십상인 공간을 비밀 아지트 느낌으로 재탄생시킨 셈이다.

공간 설계를 하는 남편 김경민 소장과 내부 마감 및 디자인을 맡는 아내 정세영 실장의 감각이 어우러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 동료로, 부부로 지내며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은 최근 한옥에서 지낸 2년간 또 다른 삶의 패턴을 만들고 있다.

“남편은 정적이고 여백이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에 반해 저는 좀 더 현대적이고 동적인 스타일이었죠. 어쩌면 서로 너무나 다른 취향이지만 그래서 더 좋다고 하잖아요. 이 사람이 비워놓은 공간에 오브제로 맞춰가는 작업을 하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고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상대가 채워주는 식이죠.”

두 사람은 조만간 마당에 간이 공간을 하나 더 설치할 예정이다. 간혹 대문을 열어놓으면 삼청동의 특성상 골목을 누비던 관광객이 한옥 체험 공간인 줄 알고 들어오기도 해 조금 더 사무적인 공간을 마련할 필요를 느껴서인데,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거나 직원들의 공간으로 꾸며 일과 일상을 구획할 계획이다.

외부로 오픈되어 있던 툇마루 부분에 벽을 쳐서 실내 복도로 만들었다. 그 끝에는 아이들이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연출했다.

공간을 닮아가는 사람들과 느리지만 단단한 삶의 방식

에디터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어너더 디를 두 번 찾았다. 첫 번째에는 굽이굽이 꺾인 낯선 골목에서 길을 헤맸고, 두 번째 방문하던 길엔 눈이 내려서 언덕을 오를 때 꽤 긴장을 했더랬다. 남편 김경민 소장은 한옥 예찬론자다.

“한옥은 어린 시절에 놀던, 마당 있는 할머니댁의 기억을 떠올려줘서 고향처럼 편안함이 느껴져요. 아이들이 흙을 밟고 자랄 수 있는 것도 큰 메리트고요. 동네가 주는 특유의 매력도 있어요. 하루 종일 일 때문에 힘들다가도 밤에 잠깐 산책을 나가면 하늘에선 별이 보이고, 뒤로 인왕산이 펼쳐져 있어 공기도 꽤 좋거든요. 그야말로 일상이 힐링인 셈이죠.”

동네 고양이가 불쑥 놀러 오기도 하고, 잠시 키웠던 개에게 밥을 주려고 내놓으면 참새와 까치가 날아오는 풍경까지, 한옥살이는 일반적인 집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소소한 행복이 있다. 이런 경험들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저희 두 사람 모두 늘 앞만 보며 치열하게 살았는데 아이가 생기고, 한옥에서 살며 우선순위가 일에서 가족으로 바뀌었어요. 더 좋은 엄마, 아빠가 되고 싶어지더라고요. 아이들이 자라듯, 저희 부부도 함께 내적으로 단단해지고 있는 기분입니다. 또 다른 꿈을 향해 모인 공간을 의미하는 ‘어너더 디’처럼 아이들의 꿈, 부부의 꿈 그리고 우리 사무소의 꿈이 단단하게 영글고 있는 중이에요.”

1 모던하게 꾸민 직원들의 사무실. 오른쪽 통유리 문을 통해 바깥으로 오갈 수 있어 아이들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

2 침실 한쪽으로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이곳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기획=박주선 여성중앙 기자, 사진=이과용(brick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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