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 우리집 주·치·의] 대장암과 내시경 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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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저는 아직도 검사 당일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보호자로 참여한 저는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아내의 대장 속을 조심스레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검사를 시작한 지 5분 남짓 만에 대장과 소장이 연결되는 깊숙한 부위에서 직경 2.5㎝ 정도의 혹이 발견됐습니다. 저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제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 배웠던 대장암과 비슷한 모양의 혹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신문과 방송에서 건강을 강조하던 내가 정작 아내의 건강은 제대로 못 챙겼구나'하는 자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 혹은 암이 되기 직전 단계에서 멈춘 양성종양(폴립)으로 밝혀졌습니다. 결과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만일 그때 아내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피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어찌되었을까요. 아마 지금쯤 커다란 암 덩어리로 자라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희 집 화장실 조명은 엄청 밝아졌습니다. 여러분도 화장실 조명은 가급적 밝게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소변의 색깔은 물론 침이나 가래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대장내시경 검사입니다. 대장암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암이기 때문입니다. 가수 길은정씨나 탤런트 전운씨도 대장암으로 숨졌습니다. 폴립 단계에서 일찍 발견할 경우 내시경 끝에 달린 고리로 묶어 전류를 흘려주면 금세 제거됩니다. 아프지도 않고 흉터도 생기지 않습니다. 말이 암이지 감기보다 치료하기 쉽습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도 대장 내시경을 통해 폴립을 제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 발견하면 수술이나 항암제, 인공항문 등 백약이 무효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과서엔 50세 이후부터 4, 5년에 한번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지침일 뿐입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좀더 이른 연령에, 자주 받아서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제 아내도 38세 때 혹이 발견되었지요. 저도 3년 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공항에 가보시면 대장암으로 숨진 제임스 올슨 전 AT&T 회장의 딸이 대장내시경을 권유하는 캠페인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대장암에 관한 최선은 대장내시경'이란 경고문구와 함께 말입니다. 아직도 대장내시경을 받지 않은 분이라면 서둘러 받으시길 바랍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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