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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안 내는 사람 너무 많다 … 세원 넓히되 세율은 낮춰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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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05면

서영택 전 국세청장이 12일 증세 논란에 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김춘식 기자

‘세금은 부자를 가난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는 없다.’

[위기의 재정 민주주의] 서영택 전 국세청장이 보는 증세론

서영택(76) 전 국세청장은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의 사무실에서 표지에 이런 글이 새겨진 책을 내놨다. 자신의 공직 경험담을 모아 6년 전 펴낸 저서 『신세는 악세인가』였다. 최근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증세 논란에 대해 30여 년간 세정(稅政)을 담당한 조세전문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복지 확대는 필연적으로 세금논쟁을 부를 수밖에 없다”며 “세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져야 할 시대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복지재원 마련에 국민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동참해야 국민개세(皆稅)주의가 실현될 수 있고 납세 불만도 오히려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표지 문구가 인상적인데, 부자 감세에 반대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겠다.
“조세제도의 민감성을 지적한 것이다. 세금부과는 조세저항이라는 후유증, 또 ‘불법에 가까운 절세’ 같은 부작용을 유발한다. 저소득 계층도 돈을 벌어 중산층이 되고 고소득층이 되었을 때 흔쾌히 납세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건전한 납세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세금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복지와 내가 내는 세금은 비례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게 복지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소득자일수록 그런 인식을 해야 한다. 중산층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중산층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세금을 더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현재 상위 20%가 세금의 80%를 낸다.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더 내라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재정학자 리처드 굿에 따르면 실효세 부담률이 30%를 넘어서면 세금 회피 경향이 매우 커진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를 한 것처럼 복지를 위한 재원 조달에 국민 모두가 동참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면세자 많아 소득세 부담 비율 낮아
-우리 조세체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뭔가.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 제도의 틀에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전체 세수에서 소득세 부담 비율이 낮은 게 문제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5%보다 높은데 국민소득(GDP)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 소득세 과세 대상에서 빠지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근로소득자 중에 34~36%가 과세미달자다. 정치적 선심이 이 구간을 크게 만들었다. 자영업자의 경우 21%가 소득세 과세대상에서 빠진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간이사업자가 32%나 된다. 사업하는 사람 셋 중 한 사람이 세금을 안 낸다는 얘기다. 그러니 과세기반이 취약하다. 모든 국민이 세금을 조금이라도 골고루 내는 게 바람직하다. 단돈 100원을 벌어도 아주 조금은 세금을 내야 한다. 그래야 고소득자들에게 더 내라고 요구할 수 있다. 과세 기반은 넓게, 세율은 낮게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내는 사람에게 더 내라고 하는 것보다 안 내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병원·학원·금융업 등은 부가세 과세대상에서 빠진다. 강남 성형외과 가면 전부 현금 거래한다. 정부가 할 일은 세금 안 내는 소득이 없도록 찾는 것이다. 주식매매차익 같은 자본이득도 과세 대상에 넣어야 한다. 소득세만으로는 과세기반이 좁다.”

공직자의 설득력이 중요한 시대
-박근혜 정부의 5년간 복지엔 135조원이 필요한데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다.
“복지재원 조달 방법으로 비과세 감면 정비 18조원, 지하경제 양성화 27조원, 세출 구조조정으로 84조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걸 다 합쳐도 129조원이다. 이미 부족한 액수지만 문제는 이것도 현재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거다. 더구나 경제성장 전망을 잘못해 지난해 세금이 덜 걷혔다. 비과세 감면 정비, 세출 조정은 정부가 모든 걸 건다는 큰 각오로 임해야 한다. 세율을 올려 증세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이 많아서다. 정부가 아무리 깎아도 국회에서 다시 살아나기 십상이다. 정 안 되면 비과세 감면제도를 모두 없애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실제 1981년 세제개혁 당시 장관들이 자기 부처와 관련된 비과세 감면 철폐에 모두 반대해 일이 진행이 안 됐다. 그래서 조세감면을 일괄적으로 없앤 적이 있다.”

-복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대마다 과제가 있다. 복지가 시대적 과제라면 다른 걸 희생해야 한다. 그렇다고 복지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국채를 발행해 복지에 썼다간 금세 빚더미에 올라앉고 그리스처럼 된다. 복지에 최선을 다하되 빚져 가면서 할 수는 없다는 점을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국회가 못하면 정부가 해야 한다. 이런 복지는 줄이겠다고 하고 반대가 심하면 세금 올릴 수밖에 없는데 괜찮겠나 따져보는 토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과거와 달리 공직자들의 설득력, 소통의식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조세정책에 있어서 입법부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경제가 글로벌화하면 조세체계도 글로벌화해야 한다. 법인세·소득세가 높으면 누가 우리나라에 오겠나. 정치권에서는 대기업만 생각하고 ‘법인세 올려라, 고소득자 세금 더 내라’ 하는데 조세에는 조세의 원리와 체계가 있다. 정치권에서 왜곡하면 그게 쌓여서 조세감면이 확대되고 과세기반은 줄어든다. 경제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조세정책, 정치권보다 내각이 주도해야
-조세정책은 정부가 주도하는 게 옳다는 얘기인가.
“정부 내각이 주도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조세 전문가들이 복수의 안을 마련해야 한다. 법인세만 올릴 경우, 법인세·소득세를 함께 올릴 경우 등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각각의 조세저항과 부작용까지 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만든 안을 과거의 세제발전심의위원회 같은 기구에서 재검토한 뒤에 어느 정도 의견을 모아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복지는 어느 선까지, 증세는 어느 선까지 할지 합리적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다.”

-법인세 인상 논란을 어떻게 보나.
“국가 간 조세경쟁(tax competetion) 차원에서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쪽으로 세금 올리면서 한쪽으로 공장 지으라고 할 수 있겠나. 래퍼 곡선이란 것도 있다. 세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투자를 비롯한 경제활동이 둔화돼 결국 세수도 줄어든다. 또 법인세율을 높인다고 세금이 더 걷힌다는 보장도 없다. 조세감면 정책도 대부분 비즈니스 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과 연관이 있다. 갑자기 제도를 축소하고 법인세율을 높이면 기업이 체감하는 부담은 커진다. 복지를 위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포기할 것인가. 정책은 선택이다. 선택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서영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제13회 고등고시 합격 후 국세청과 재무부를 오가며 세정과 세제를 두루 담당했다. 재무부 국세심판소장과 2차관보를 거쳐 국세청장, 건설부 장관을 지냈다. 저서로 『신세는 악세인가』가 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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