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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장」효심에 병마도 물러섰다|중풍 어머니 기적의 쾌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윤숙양의 어머니가 일어섰다. 12세 소녀가장 김윤숙양(중앙일보8월6일자 사회면보도) 에게 쏠렸던 온정의 손길은 하반신 마비로 누워 지내던 윤숙양의 어머니 이정희씨 (48) 를 두 다리로 걷게 하였고 금에 그리던 아담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며 좌절에 빠졌던 다섯가족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머니 이씨가 경희의료원에 입원한지 66일만에 퇴원하던 17일, 입원했던 712호실에는 김양가족의 새출발을 축복하는 이웃들의 밝은 웃음이 활짝 피었다.
『며칠만 기다리세요. 내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당신을 위문할테니까요.』
어두운 그늘에 덮였던 어머니 이씨의 얼굴은 이제 밝은 혈색을 되찾았고 옆병상에 누운 환자를 위로할 만큼 완치단계에 들어셨다.
지난 8월12일 입원한 이씨는 그동안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해오다 컴퓨터를 이용한 정밀진단을 거쳐 지난달 20일 유명철 정형외과 과장의 집도로 무릎관절과 발목부분의 근육이완수술을 받았다.
『중풍으로 마비증세가 왔다해도 환자의 증세에 따라 수술로 정상에 가깝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절망적 이었지만 지금 단계는 아주 가격이라 할수 있습니다. 의료진으로서도 최신의료기술을 병원,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술을 맡았던 유과장은 앞으로 기브스를 풀고 얼마간 물리치료를 계속하면 보행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의보대상자로 병원측에서 지금까지의 입원·치료·수술비를 계산한 것은 1백9만7천8백원. 그러나 경회의료원은 전액 무료로 결정했고 앞으로의 마무리 처치도 무료로 보아 주기로 했다.
그 동안 중앙일보와 광숙양집·학교·동회 등을 통해 들어온 성금은 1천3백여만원. 1개월전 윤숙양 가족은 서울 상계2동 156의52에 대지25평, 건평 14평 짜리 아담한 한옥을 내집으로 마련했다.
『정말 비둘기 집처럼 예쁘고 아담해요. 방이 3개입니다)집값이 2천만원으로 부족한 7백만원은 온채 전세를 주었다.
어린 윤숙양의 계획은 1년뒤 새집입주를 목표로 꼭 짜여져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철거되면 아파트 입주권이 나온데요. 팔면 3백만원쫌 마련되고요. 방 3개중에 2개만 쓰고 하나는 전세를 주면 부족한 7백만원은 채울 수 있을거예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윤숙양의 생활은 더 바쁘고 고달픈 것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가 앞 못보는 아버지를 돌보아야 했고 오빠와 동생 시중을 들고 다시 병원에서 밤늦도록 어머니를 간호해야했다.
『어린 몸에 그처럼 열심히 살고 풍부하는 걸 처음 보았어요. 어머니가 잠들면 그때부터 밀린 공부와 과제를 새벽까지 하더군요.』
윤숙양 어머니와 같은 병실의 이귀례씨 (56) 는 침대 옆에 엎어져 잠든 윤숙양을 너무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래도 윤숙양의 학교성적은 떨어지지 않았다. 우수하지는 못해도 전처럼 계속 중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담임 박형균교사(37)는 『급우들이 본질적으로 돕지는 못했지만 돌아가며 윤숙양의 집을 돌봐주고 윤숙양의 당번이나 청소를 대신해주어 부족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고 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윤숙양 앞으로 보내온 위로와 격려의 편지는 4백여통에 이른다. 아직 일일이 답장을 못했다는 윤숙양은 어머니가 완쾌되는 대로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답장을 보내겠다고 했다.
많은 성금이 들어 왔으나 조금도 헤프게 쓰는 법이 없다고 동네에서는 말한다.『어머니 치료, 우리식구가 편히 잠잘 수 있는 집이 전부 있어요. 먹는거야 아무러면 어때요』
윤숙양은 지금도 생보자에게 동회에서 주는 쌀 40kg, 보리 36kg으로 한 달을 살고 두 달에 한번 주는 부식비 7천원, 상계부흥교회에서 교인들이 도와주는 장비로 불평 없이 살아 가고 있다고 했다.
『착하고 열심히 살겠읍니다. 며칠 뒤 엄마와 함께 걷는 모습을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께 보여 드릴께요.』
병원문을 나서는 윤숙양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김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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