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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후배 문인들이 회고한 초정의 '시조 인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어느 날 선생께서 백자 항아리 그림 한 점을 내게 주셨다. 하지만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글씨와 그림을 낳는 선생의 빈 마음의 항아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을, 평생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 못난 시 한 편으로 남기게 되었다."

문단 원로 이어령(72) 선생의 글이다. 누군가를 향한 존경의 뜻 그득하다. 박경리(79) 선생이 1972년 누군가에게 쓴 편지도 있다. '고맙습니다. 너무 기쁩니다. 저를 칭찬해 주신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에 관한 부분이 없었다 하여도 그 글은 고맙고 기쁜 글이었습니다.' 칭찬받은 일이 하도 기뻐 누군가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다. 그 누군가는 행복하리라. 지금은 비록 북망산에 누웠더라도 행복하리라. 후배 문인들이 올린 진심의 글을 읽어본 시조시인 초정(艸丁) 김상옥(1920~2004) 선생은 진정 흐뭇하리라.

생전의 초정과 있었던 일화를 후배 문인 36명이 소개한 추모집 '그 뜨겁고 아픈 경치'(고요아침)는 잔잔하고 묵직하다. 그만큼 초정을 기리는 마음 간곡하다. 지난 반세기 강직하면서도 고결한 시조시인의 길을 걸었던 선생이었기에 여태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이다. 선생의 제자인 민영 시인이 엮은 '김상옥 시전집'(창비)도 출간됐다. 두 책 모두 지난해 10월 31일 타계한 선생의 1주기를 맞아 문단에서 정성을 모은 것이다. 고인은 82년 제1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자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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