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약·여자 … 예술가는 고독하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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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밤의 여왕(마술피리) 역 말고도 자주 하는 배역이 있다. 바로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2막에 등장하는 자동 인형 올림피아다. 주인공 호프만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듣지만 결국 고장나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최후를 맞는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캐릭터다. 2003~2004년 시즌 베를린 도이체 오퍼에서는 올림피아 말고도 안토니아(병든 가수.3막).줄리에타(창녀.4막) 등 1인 3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었다. 모두 여주인공 스텔라의 분신이다.

작곡자의 의도대로 1인 3역을 할 수 있는 소프라노는 세계적으로 몇명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막이 바뀔 때마다 다른 소프라노가 출연하는 게 보통이다. 올림피아는 콜로라투라의 화려한 기교를 요하고, 안토니아는 서정성과 파워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 또 줄리에타는 저음이 풍부해야 하므로 가끔 메조소프라노가 맡기도 한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정은숙)이 24~27일 '호프만의 이야기'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술.마약.여자에 푹 빠져 46세에 세상을 떠난 독일의 작가 E T A 호프만(1776~1822)의 얘기다. 호프만은 작곡가.평론가.법률가.화가로도 활동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오펜바흐는 호프만에게서 사랑에 실패한 예술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호프만의 이야기'는 프랑스 오페라로는'카르멘'다음으로 인기가 있다. 환상과 마술이 무대를 수놓는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있는 이윤택씨가 연출을 맡았다. 7년 전 지방에서 푸치니의'나비부인'을 연출한 적이 있지만 서울 무대에서는 데뷔작이다. 작은 술집에서 펼쳐지는 원작의 배경을 200년 후 우주 공간으로 옮겼다. 인간들이 환경오염으로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나 외계인이 지배하는 우주정거장으로 피신해오면서 극이 시작된다. 2막에서는 합창단이 반나체로 나와 무대를 기어다닌다.

장 폴 프넹이 코리안 심포니를 지휘하고 테너 박현재.하석배(호프만 역), 소프라노 신지화(안토니아).김수진(올림피아).이현정(줄리에타), 메조소프라노 추희명(니클라우스)등이 출연한다. 공연 개막 오후 7시30분, 토.일 오후 4시(24일 쉼). 02-586-528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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