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결정 그 후…] 반대단체에 비난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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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 탈락 지역 후유증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에 실패한 지역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군산 시민들은 3일 핵대책위 등 반대단체들에 "지역 경제발전을 가로막았다"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일부 시민은 핵대책위 관계자들에게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가장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탈락한 영덕군은 일부 지역에서 마을방송 등을 통해 반대단체를 성토했다. 찬.반 단체 간 갈등이 빚어지면서 반대단체는 궁지에 몰리는 양상이다.

◆ 군산=3일 오전 11시쯤 전북도청에서 문규현 신부 등 군산 핵폐기장 대책위가 강현욱 전북지사 퇴진운동 기자회견을 하려다 시민 20여 명이 몰려와 무산됐다. 시민들은 "지역발전 가로막는 문 신부는 전북을 떠나라"고 외쳐 문 신부가 30여 분간 봉변을 당했다. 일부 시민은 울분을 터뜨리며 문 신부를 폭행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80% 넘는 시민들이 찬성했는데 15% 지지를 받은 반대단체가 무슨 기자회견이냐"며 "반대단체는 시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핵대책위 사무실에도 이날 하루 수십 건의 항의 전화가 잇따랐다. 반대만 하는 단체는 군산을 떠나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군산 국책추진위원회 김현일 위원장은 "대안 없이 반대만 일삼는 단체는 앞으로 존립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3년 방폐장 유치로 홍역을 치른 부안군 일부 주민도 방폐장이 경주로 결정되자 당시 반대에 앞장섰던 일부 환경단체를 원망했다. 이모(46.부안군 부안읍)씨는 "방폐장 유치에 불을 붙인 것은 부안군민인데 혜택은 엉뚱한 곳이 봤다"며 "방폐장 위험성에 대한 환경단체의 과장된 홍보에 속은 것이 원통하다"고 말했다.

◆ 영덕.포항='영덕군 핵폐기장 설치 반대대책위' 권경만(40) 홍보위원장은 3일 오후 2시쯤 영덕읍 대부리 해안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마을방송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반대표가 많이 나온 특정마을을 거론하며 이를 성토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권 위원장은 "실제로 이 동네에서 반대표는 90여 명인데 과장된 방송을 듣고 '잘못하다간 큰일 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을방송은 바닷가 낚시터 등 온 동네에 울려퍼졌다. 반대 측엔 항의 전화도 이어졌다. 반대대책위 한병학 사무국장은 "개표 결과가 나온 이후 혹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를 우려해 몸을 낮추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포항은 찬성률이 가장 낮았던 만큼 찬.반 간에 갈등은 나타나지 않지만 반대대책위 박창호 정책실장은 찬성 측의 원망을 우려한 듯 찬.반 시민 간 '화합'을 강조했다.

경주.군산=송의호.서형식 기자

경주시 카퍼레이드
주민투표를 통해 방폐장 유치 지역으로 최종 선정된 경북경주에서 3일 백상승 시장 등 관계자들이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주민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경주=조문규 기자

"수천억 지원금" 들뜬 양북면
유치 성공 지역 환호성

"정부의 지원책이 시행되면 우리 동네가 크게 발전할 것 아닙니까. 살맛 나는 고장으로 거듭나야지요."

3일 오전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대본해수욕장 인근 상가. 방폐장 부지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이곳 주민들은 봉길리가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횟집과 매점 등 17개 점포 주민들은 "우리가 전폭적으로 지지해 찬성률이 90%에 육박했지 않느냐"고 자랑했다.

주민들은 정부와 경북도 등의 지원책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특별지원금 3000억원, 연평균 85억원의 폐기물 반입 수수료 등 천문학적인 지원이 지역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T횟집 주인 조한수(52)씨는 "처음엔 찬반 의견이 갈려 갈등도 겪었지만 이젠 모두 훌훌 털었다"며 "지역이 발전한다는데 얼마나 좋으냐"고 반문했다. 양북면 소재지인 어일리 주민들도 기대감에 들떠 있다. 한수원 직원이 이주하면 면 소재지인 어일리가 도시로 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양북면은 전체 인구가 4400여 명에 불과하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방폐장과 본사 신축, 양성자가속기 등을 건설하면 이곳에 2만 명 이상의 인구가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근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방폐장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들 것이란 의견도 있지만 견학하는 사람이 늘면 오히려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온 관광버스 기사 최만섭(52)씨는 "우여곡절 끝에 건설되는 방폐장이어서 견학하는 사람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성원자력본부의 김관열(47) 홍보부장은 "주민들과 협의해 지역과 회사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방폐장 건설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봉길1, 2리의 40여 가구 주민들은 어두운 표정이었다.

주민 허만순(65.여)씨는 "집은 원전 부지에 편입돼 보상을 받았지만 마을 뒤에 있는 2000여 평의 밭과 산은 빠져 있다"며 "이 땅도 사주면 여기를 뜨겠다"고 했다.

경주=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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