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영화] 신이 어딨어, 총이 신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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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주연:알렉산드레 로드리게스.레안드로 피르미노.펠리페 하겐센

장르:범죄 스릴러

홈페이지:(www.cityofgod2005.com)

20자평:섬찟한 총격전, 냉혹한 통찰력

이 영화에는 세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첫째 제목, 둘째 장르, 셋째 '실화'다. 이 세 가지 코드를 통해 '더럽게 전복적'이며, '미치도록 진지한' 영화, '시티 오브 갓'을 소개한다.

아이러니 #1 - 휴머니즘, 웃기지 마라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시티 오브 조이'가 떠올랐다. 브라질. 빈민가.아이들을 다룬 영화라 하니 휴머니즘이 가득한 '감동의 도가니탕'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영화는 완벽하게 예상을 뒤엎는다. 빈민촌인 '시티 오브 갓'은 무법천지에 가깝다. 대체 '갓'은 어디 있는가, 갓은 기도문의 갓이 아니라, 욕설의 갓인가 보다 … 하다가 영화가 끝날 즈음에야 깨닫는다. 여기서 신은 유일신이 아니라 범신론 혹은 이신론(理神論)적 신임을 말한다. 신은 개입하지 않고, 세계는 독자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자연법칙 속에 신의 섭리가 스며 있을 뿐이다.

영화 속 등장 인물인 알리카치는 가톨릭에 귀의해 목숨을 구하고 악동 제페게노는 '어떤 신'이 기름을 부어 악당으로 거듭난다. 근본적으로 영화 속 신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죄 많은 인간이 죽고 죽이는, 그 하릴없는 역사에 끼어들지 않는다. 그냥 결과로서 존재할 뿐이다.

이 영화는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그 휴머니티의 발판은 성선설이 아니다. 오히려 성악설을 딛고 선 자연철학적 휴머니즘에 가깝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라거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말처럼 지독한 (안티)휴머니즘을 표방하는 영화다.

아이러니 #2 - 스릴러? 누아르? 사회극?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면 스릴러보다 누아르에 가깝다. 또 한 꺼풀을 벗기면 누아르보다 사회극에 가깝다. 경쾌한 편집과 현란한 화면 구성, 그보다 뛰어난 것은 내러티브의 독창성이다. 스토리의 중심은 개인이나 한 가족이 아니다. 하나의 지역사회(커뮤니티)다. 그래서 '펄프픽션'이나 '대부' 등의 영화와 크게 다르다.

'신의 도시'라는 한 범죄 생태계가 20년의 세월 동안 천이(遷移)되는 과정은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장르는 군락 생태학을 그린 자연다큐멘터리를 닮았다. 60년대 갱스터 텐더 트리오가 보잘것없던 제페게노에게 죽임을 당하고, 70년대를 주름잡던 제페게노가 갑자기 튀어나온 복병 마네에게 도전을 받고, 결국 조무래기들에게 개처럼 죽는 거대한 수미상관이 놀랍다. 그 속에 칼날 같은 메시지와 묵직한 통찰력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시티 오브 갓'의 메시지는 '트래인스포팅' 같은 영화가 그리는 젊음의 객기가 아니다. '게임의 법칙'(장현수 감독)에 나타난 갱 사회의 비정함도 아니다. 산불이 난 지역에 이끼가 자라고, 덤불식물이 나타나고, 아카시아가 번성하다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식으로 변하는 갱스터 사회의 식생학적 변천이다. 여기서 범죄는 개인의 결단이나 일족의 흥망성쇠와 아무 상관이 없다. 비열하다는 가치판단도 없다. 그냥 그 자리를 누군가 대신할 뿐이다. 기후와 토양에 더 적합한 식물이 자라고, 죽고, 또 자라듯이 말이다. 그뿐이다!

아이러니 #3 - 픽션보다 더 끔찍한 현실

그러나 영화의 진정한 충격은 셋째 아이러니에 있다. 경로를 예측할 수 없이 비선형적으로 퍼져가던 이야기가 혁명의 홍위병 같은 아이들의 손으로 마감될 때 눈앞이 아찔해진다. 바로 그때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임을 알리는 자막과 실제 화면이 마지막 일격을 날린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 싶은 영화의 원작이 자전적 소설이다. 지구촌 어딘가 아이들이 살육의 총을 당기는 무간지옥이 있다는 현실, 그런데도 도덕을 논해가며 잘만 사는 우리들의 무관심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범죄의 자연사 박물관을 돌아보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황진미(영화평론가.진단검사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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