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나도 병원은 책임안진다”일방적인 수술서약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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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시내 일부 종합병원이 수술 또는 검사를 받으려는 환자에게 「수술 또는 검사후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후유증이나 합병증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과 이의제기를 않는다」는등 의료사고 책임을 회피하는 문구를 신청서에 미리 인쇄, 서약하는 환자에 한해서만 시술하고 있어 말썽을 빚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법원에서 수술후유증이 생겼을 때 의사과실의 개연성만 입증되면 병원측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한다는 판결이 나온 후 나타난 것으로 다른 병·의원에서도 이에 따를 것으로 보여 주목되고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다급한 환자에게 불리한 서약서를 받아들이게 하는 계약행위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맺어진 약속」이 아닌만큼 불공정한 법률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종합병원이 종전에 환자로부터 받아오던 수술서약서는 단순히 「수술과 이에 필요한 마취및 수술숭에 필요한 기타 수술을 승인하며 이로인한 어떠한 결과에 대하여도 하등의 이의가 없음을 서약한다」고 되어있다.
서울대 부속병원의 경우 지난달 1일부터 종전에 의사가 수술할 때 환자나 보호자로 부터 동의형식으로 받아오던 수술서약서를 「수술·검사요청서」로 바꿔 이 요청서에 날인한 환자만 받아들이고 있다.
이 요청서에는「환자는 수술·검사로써 불가항력적이나 일반적으로 야기될수도 있는 합병증 또는 후유증, 환자의 특이체질로 인한 우발사고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수술또는 검사를 실시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되어있고 「수술·검사에 따른 일반적인 후유증이나 합병증에 대하여 민·형사상의 소제기 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고 못박고있다.
이 요청서는 환자 본인이 서명·날인토록 되어있으나 환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심신장애로 본인서약이 불가능할 때에 한해 친권자나 보호자가 대신 서명토록 하고 있다. 또 입회자란도 두어 입회자의 주소·성명·날인을 받고있다.
연세대의대병원도 지난6월부터 환자 또는 보호자로부터 받아오던 수술승낙서를 수술·검사·마취신청서로 바꾸었다.
이 신청서에는 「우발적사고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뜻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어있다.
병원측이 이처럼 강한자구책을 마련하게 된 것은 지난 5월19일 서울고법의판결이 있고 난 이후부터다.
이 판결은 안면경련증치료를 위해 수술을 받은 후 후유증으로 팔·다리등 부전마비증세를 일으킨 김남즙씨등 일가족4명이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팔다리등 부전마비는 안면경련증의 일반적인 후유증이 아니며 김씨가 이러한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는 특이체질이라는 증명이 없어 의사가 수술중 소내혈관이나 뇌에 손상을 가한 사실이 추정된다」 고 판시, 「병원측이 김씨등에게 4천여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일방적약속 민법상으론 무방>
▲정광진변호사=인술을 베푸는 병원이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에게 불리한 서약서를 날인토록 하는 것은 법률상의 효력을 떠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거부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받은 서약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입장에서 이뤄진 약속이라고 보기 힘들며 아울러 민법 l04조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따라 무효라고 봐야한다.
▲문국진교수(고려대의대법의학)=우선 명칭이 서약서에서 요청서로 바뀌어 수술주체가 의사에서 환자로 바뀌게 되었다. 전에는 마치 수술이 의사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 요청서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수술 후유증이나 합병증으로 신체의 다른 부의에 손상을 입는다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미리 이를 포기하게 한다는 불리한 면도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환자의 입장이 강조될 경우 의사외 의료행위가 위축되고 국민에게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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