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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실내악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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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스트리아의 음악인들은 「하이든」을 『파파』라고 불렀다. 「프란츠.요제프.하이든」보다 「파파하이든」이 그 시설, 그들에겐 더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그의 음악과 인품을 두고 한 말이다. 마치 훌륭한 식견과 높은 인격을 갖춘 노신사가 젊은이들에게 나직이 그의 경험을 속삭여 주는 것과 같은 음악.
그것은 「실내악의 아버지」이기도 한 「하이든」의 음악을 이해하는 에피소드도 된다.
실내악은 글자 그대로 「체임버 뮤직」혹은 「카머 무직」이라고 한다. 여기의 「체임버」나 「카머」는 단순히 누구 집의 「실내」가 아니다. 궁정을 의미한다.
왕족이나 귀족들을 위한 작곡이 실내악이고, 그것을 궁정에서 연주하는 것이 실내악단이다.
「하이든」은 젊은 시절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가의 실내악단 부악장으로 취임, 30년 가까지 그 성에서 보냈다. 그의 유명한 교향곡 45번 『고별』이 작곡, 연주된것도 그 때다.
이무렵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에스테르하지」가의 별장은 멀리 떨어진 전원에 베르사유궁의 축소판 같이 세워진 장려한 성이었던 모양이다. 「니콜라우스.에스테르하지」공은 봄부터 가을까지 악원들과 함께 이 별장에서 보냈다.
그러나 별장 규모가 크지 않았던 탓인지 악원들의 가족동반이 허용되지 않았다. 악원들은 그야말로 「생 홀아비」로 3계를 지내야했다.
어느날 「하이든」의 『고별』연주에서 제3악장까지는 흔히 들고 보는 교향악처럼 진행되었다. 그러나 4악장이 시작되면서 연주 도중 제1오보에, 제2 호른 주자가 자리를 뜨고, 그 뒤를 이어 파곳토, 제2오보에, 콘트라밧소 주자가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곡이 끝날 순간엔 지휘자 「하이든과 바이얼린 주자만 남게 되었다. 「하이든은 작곡자체를 그렇게 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에스테르하지」공은 「하이든」을 불러 악단원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게 했다는 얘기다.
유럽에 시민계급이 대두하고 봉건사회가 무너지면서 실내악도 비로소 궁정을 벗어나게 되었다. 황족이나 귀족의 사유물에서 풀려난 것이다.
따라서 연주회장도 밀폐된 궁정에서 넓은 시민의 홀로 옮겨졌다.
실내악의 매력은 관현악보다 담박하고 작곡자의 의도에 보다 가까지 접근할수 있는데 있다.
실내악의 연주자들은 독주자와 다를바 없을 만큼 우수한 실력이 요구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독주자와는 다른 협주 적인 무드 속에서 연주해야한다. 실내악단 멤버들이 같은 고향 출신이나 같은 음악학교, 또는 같은 교향악단 출신으로 구성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일보 초청으로 오는 9일 내한, 바로 『고별』등을 연주하는 베를린실내악단은 1백년 전통의 세계 정상 오키스트러인 베를린 필하모니의 정수주자 2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베를린 필하모니의 진면목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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