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첫 만남서 3박4일간 술잔 주고받다 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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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종도(오른쪽) 고려대 야구부 감독이 김동광 KT&G농구팀 감독을 격려하기 위해 팀의 근거지인 안양 체육관을 찾았다.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농구공 돌리기'를 해보이는 이 감독. 강정현 기자

"새벽 어스름 '퉁, 퉁, …' 체육관을 울리는 경쾌한 소리에 이끌려 가면 그곳엔 늘 (김)동광이가 있었죠. 농구가 인생의 전부인 양 연습에 몰두하는 그 모습에 끌렸고, 강한 자극을 받았어요."

"저녁에는 늘 (이)종도가 체육관으로 찾아왔어요. 대형 거울 앞에서 쉴 새 없이 방망이를 휘둘렀죠. 그 어떤 것보다 야구를 우선 순위에 둔 모습이 좋았어요. 돌쇠 같은 모습이랄까."

고려대 70학번 동기이자 54세 동갑내기인 김동광 프로농구 KT&G 감독과 이종도 고려대 야구 감독은 둘도 없는 단짝이다. 둘은 우연히 친구가 됐다.

"1학년 때인 70년 9월 마지막 주말 연세대와의 정기전이 끝나고 휴가를 받았어요. 친구들과 인천 무의도로 가는 배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얼굴은 아는 사이였으니까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죠. 그렇게 시작한 술이 3박4일 동안 이어졌고 마음 통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느낌을 서로 갖게 되었죠."

어떻게 만났냐는 말에 두 감독은 35년 전의 똑같은 추억을 떠올렸다. 며칠의 휴가가 끝난 후, 둘은 서로의 그림자가 됐다. 이 감독은 야구부 숙소 대신 농구부 숙소에서 잠을 자는 것이 예사였다. 저녁이면 체육관에 함께 올라가 개인 연습을 했다. 이 감독이 "넌 슛이 약해서 안 되겠다"며 김 감독에게 특별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격려했고 채찍질했다. 그리고 젊은 그들의 만남에는 술과 음악이 동행했다.

"훈련이 끝나면 명동에 자주 갔어요. '가스등'이나 '이브'는 당시 우리가 즐겨 찾던 록카페였어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과 이국적인 음악, 그리고 맥주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하루 저녁에 맥주 50병은 너끈히 해치웠으니까."

그룹 맨하탄스의 'Kiss and Say Goodbye'는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들의 입안에서 맴돌고 있는 애창곡이다. 두 사람에게 술과 음악은 다음날 운동을 위한 '휘발유'와 같았다고 했다.

"술 한 잔 안 하면 마치 차량이 '엥꼬'(기름이 떨어져 운행이 안되는 상태의 속어)가 나서 다음날 경기가 잘 안되더라고요. 젊었었으니까."

당시를 회상하는 김 감독의 눈에는 그때 그 카페의 분위기가 그려져 있는 듯했다.

"그랬었어. 술로는 동광이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 보통 잘했어야지."

이제는 그전처럼 마실 수 없다는 이 감독의 말에는 추억과 세월이 묻어 나는 듯했다.

"이젠 둘이서 보드카 1병 마시면 딱 좋아요."

두 사람의 인연은 졸업 후에도 이어졌다. 김 감독은 명동에 위치한 기업은행에, 이 감독은 퇴계로에 있는 제일은행에 적을 두고 실업팀 선수로 활약했다. 바로 옆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종도 감독이 "술 그만 마셔야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프로 선수가 됐으니 이전처럼 마실 수 없다는 얘기였다.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이 감독은 MBC 청룡 유니폼을 입었다. 김 감독은 섭섭했다. 그리고 이 감독이 삼성과의 개막전에서 끝내기 만루 홈런을 치는 모습을 봤다. 김 감독은 그때 프로를 배웠다고 한다.

지금은 자리가 바뀌었다. 김동광 감독은 프로에 있고 이종도 감독은 아마추어에 있다. 현재 경기도 용인 수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앞뒤 동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은 틈만 나면 만난다. 털어 놓을 것이 많고 말해 줄 것도 많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대면서.

무엇이 두 사람을 이렇게 오랜 기간 끈끈하게 묶어놓고 있는 지 궁금했다.

"이유가 있냐고요? 허허…. 그냥 좋은 거지 뭐."

강인식 기자<kangis@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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