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외국기업들 '집중 구애'… 홍익대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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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인치호 학과장(왼쪽에서 셋째)과 학생들이 나이키 본사 디자이너 채용 담당 임원인 앨런 브라보와 리사 올리비아(오른쪽부터)에게 자신들의 디자인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홍익대 서울캠퍼스의 산업디자인학과 작품발표실. 미국 나이키 본사의 디자이너 채용 담당 임원 두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이 학과 3학년 임지수씨와 '디자인 면접'을 했다. 나이키가 내년 후반께 채용할 디자이너들을 찾으러 온 것이다.

"자신의 운동화 디자인 개념을 설명하면."

"신발을 신은 뒤 발목과 발가락이 척추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나이키 임원들은 임씨의 디자인 작품집(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며 15분 동안 질문을 던졌다. 문답은 영어로 오갔다.

나이키 임원들은 이날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재학생과 졸업생 10명을 면접했다. 학과에 따르면 면접을 한 나이키 측은 면접 대상 학생 중 2~3명을 뽑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고 한다. 나이키는 올 봄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에 "그곳 출신이 GM.모토로라 등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것을 안다. 학생들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 면접이 이뤄졌다. 나이키는 국내 대학 중 홍익대만 들렀다.

젊은 디자인 인재들을 찾으려는 다국적 기업들이 잇따라 '홍익대의 디자인 힘'에 주목하고 있다. 나이키에 앞서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미국의 마텔은 올 7월 전 세계 5개 대학의 학생들을 초청해 연 장난감 디자인 경연 대회에 홍익대 대학원생 및 대학생 세 팀을 초청했다. 아시아에서는 홍익대만 참가했다. 홍익대 출신 두 명이 최근 마텔의 홍콩 디자인센터에 입사해 일하며 두각을 나타내자 후배들이 덕을 봤다.

학생들을 인솔해 대회에 참가한 인치호 학과장은 "마텔의 팀 파시 부사장이 우리 학생들을 인턴 디자이너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의 자동차회사 닛산은 지난해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에 '미래형 자동차 디자인'을 주제로 한 산학협력 과정을 열었다. 이미 홍익대 출신 디자이너 7명이 닛산에서 활약하고 있어 이 학교만 정했다.

닛산은 산학협력 과정 수강생 중 민아영(여)씨를 정식 사원으로 채용했다. 민씨는 내년 2월 졸업한 뒤 4월부터 일본 닛산 본사 디자인센터에서 일한다. 줄잡아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출신 50여 명이 혼다.닛산.모토로라 등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졸업생들은 1990년대 중반 미국 LA아트센터 등에 유학해 실력을 쌓았고 이때부터 '세계 디자인의 벽'을 넘기 시작했다.

그 인기, 그 실력 어디서 나왔나
기업서 당장 쓸 수 있는 '실전 교육' 효과

홍익대 인치호 교수는 "기업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도록 실전 위주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디자인 과제를 내줄 때 소비자 설문조사부터 하도록 한다. 음주 측정기를 디자인 과제물로 낸다면 경찰관들을 만나 현재 음주측정기를 사용할 때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를 일일이 물어보게 하는 식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어떻게 해야 소비자에게 필요하고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를 체득하게 한다는 취지다. 여러 국내 기업과 손잡아 산학협력 과정도 많이 개설했다. 지난달 24~27일 열린 졸업작품 전시회에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텔레콤 등 국내 대기업 디자인 담당자들을 초청해 학생들이 그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설명하도록 했다. 또 학생들이 그린 디자인 평가수업(전공과목)은 영어로 진행한다. 외국기업의 채용인터뷰에 대비하고 실제 외국 기업에 입사한 뒤에도 언어 장벽으로 인해 디자인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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