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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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옛 시 한 수 없을수 없다.
-『머리 들어 산위의 달 바라보다/ 머리 숙여 고향생각하네(거두망산월 저두사고향)』
역시 이런 타취는 이백의 시가 제격인것 같다. 요즘 같이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그런 정괴에 젖지 않는 사람은 아마 몇이나 될까.
그것이 아파트의 시멘트벽 한 귀퉁이에 솟은 달이든, 어느 철탑 위에 걸린 달이든, 느낌은 매일반이리라.
-『달은 밝지만 (고향은) 보이지 않고/바닷물만 출렁이네(월명하소견 조수자망망)』
이쯤 되면 그 적막한 심정은 헤아릴길 없다. 백거역(당시인)가 이런 시를 쓸 때만 해도 지척(지척)이 천리였을 시절이다. 요즘은 교통도 그게 아니고, 명절이면 귀향이 으례 행사처럼 되었다.
향수는 감상의 하나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의 감정중에 그처럼 때묻지 않은것도 없다.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순간만은 가장 인간적이고 정적일것 같다.
악성「베토벤」도 언젠가 이런 독백을 한 일이 있다.
『고향이여, 아름다운 땅이여. 내가 이 세상의 빛을 처음으로 본 그 고장이 나의 눈앞에 떠올라 항상 아름답고 선명히 보인다. 내가 그곳을 떠나온 그날의 모습 그대로!』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은 동서가 따로 없다. 서양사람들은 향수를 「홈시크」-, 그러니까 고통의 하나로 여길 정도다.
영국작가「토머스·하디」의 『귀향』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고향을 떠나는 사람과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얘기다. 그것은 마치 선과 악의 교차를 보는것같다.
파리에서 보석상을 경영하는 한 청년은 고향에 소학교나 세워 아이들을 가르칠까 하는 생각으로 귀향. 그러나 부모를 잃고 조부슬하에서 자란 한 미모의 여성은 전원을 박차고 도회지로 뛰쳐나간다. 얘기는 그 여성쪽의 비극으로 끝난다.
물론 이것은 소설의 세계지만 고향은 어딘지 우리의 가장 따뜻한 삶이 있는 곳 같다. 우리 마음속에 향수가 있다는 말은 그런 순수한 삶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있다는 뜻과 같다.
「하이데거」같은 철인도 『향수는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좋은 계절, 모든 것이 풍성한 이 가을날에 우리가 「한가위」같은 명절을 가진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고향에 가든, 아니면 멀리서 그 고향을 생각하든, 모처럼 그런 시간과 기회를 갖는 것은 우리의 삶을 한결 훈훈하게 만든다.
아마 저 구름떼 같이 밀려가는 귀향자들도 비록 떠밀고 떠밀리는 성가심 속에서도 마음만은 훈훈할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하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올해는 맑은 하늘에 보름달까지 솟으리라는 쾌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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